[오늘의 인물] 9월 17일 윤이상-자신을 외면한 고국을 세계에 알린 음악가

입력 2016-09-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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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민족과 인류,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꿈꾸며 음악을 통한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지만 끝내 고향 통영과 고국을 다시 밟지 못한 불행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난 윤이상(1917. 9. 17~1995. 11. 3)은 통영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서당에 3년간 다닌 후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예배당에 다니며 찬송가와 풍금을 배웠는데, 음악가의 꿈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일본 오사카에 있는 상업학교에 진학하고 오사카음악대학에서 첼로, 작곡, 음악이론을 배우던 그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사는 지역에 살면서 사회·정치적 의식을 갖게 됐다. 잠시 귀국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반일 지하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태평양전쟁 전 국내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하다가 두 달 간 옥살이를 했다. 광복 후엔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하는 등 지역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유럽으로 떠났던 윤이상은 점차 국제적 명성을 쌓아갔지만 독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인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2년간 복역했다. 가혹한 고문으로 자살 기도를 했던 그는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썼는데, 독일에서 초연돼 31회의 커튼콜을 받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도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律’)과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영상’을 작곡했다. 세계 예술가들의 구명운동과 독일 정부의 노력으로 석방된 그는, 이후 서독으로 국적을 바꿨다.

1990년 평양에서 개최된 ‘범민족 통일음악제’ 준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남북한 합동공연을 성사시키기도 했지만, 1994년 남한에서 열린 윤이상음악제에는 정부와의 갈등으로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을 그리며 1995년 11월 3일 머나먼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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