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아버지가 보고 싶다

입력 2016-09-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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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낚시를 갔다온 후,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와 때를 밀어드리는 중년의 아들에게 자꾸 눈이 갔다. 물장구를 치는 개구쟁이 아들을 잡아 앉혀 몸을 씻기는 아빠도 보였다.

‘아버지도 날 저렇게 씻겨 주셨는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중학생 때였던가, 내 등을 밀어주던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게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그때 병마가 찾아왔던 것일까?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달그락달그락 장롱 문고리를 만지며 폐암의 고통을 달래던 모습이 아련하다. 아버지의 임종을 큰형님과 내가 지켜보았는데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깜깜하게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저세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지금 아버지는 40년 만에 만난 어머니와 하늘나라에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계실까?

추석 때면 할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술이 거나해진 아버지가 버스를 기다리며 사주시던 박하사탕,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잡지 한 권을 사고 남은 돈으로 사 먹었던 달달한 호떡도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침에 눈을 뜨면 아버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구구단을 외우던 때가 그립다. 손톱을 깎아주고 달력을 뜯어 책표지를 만들어주시던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았다. 제사 때 쓸 밤과 문어를 예쁘게 손질하시던 아버지의 손놀림도 눈에 선하다. 부부싸움 후 어머니가 이모님 댁에 가면 집에 혼자 남은 아버지 모습이 짠해 나 혼자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새롭다.

좀 더 오래 사셨다면 며느리들의 밥상도 받아보고 손주들의 재롱도 즐기고 증손주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작 그렇게 슬픈 줄 모르다가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해질 때가 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약주 한잔 대접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 와 닿았다.

살아 계셨더라면 올해 100세를 맞았을 아버지의 50대를 떠올려본다. 그때 아버지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도 힘들고 울고 싶었을 때가 있었겠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버지에게 나는 또 어떤 아들이었을까?

아버지는 조상을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한 가정을 강조하셨다. 과묵한 성품의 아버지는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식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으셨다. 회초리를 가져 오라고 시킨 다음 자신의 화를 조절하셨다. 우직할 만큼 정직해서 송사에 휘말렸을 땐 변호사의 조언도 무시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바른말을 했다가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나는 머리숱이 적은 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가 남긴 정신적 유산을 받들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었는지 돌아본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내 아이들은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까? 아버지와는 달리 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남아 우리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든든한 마음의 기둥이 되어 주고 싶다. 추석이 다가오니 유난히 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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