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끝나지 않은 전쟁⑦] 일본인들은 왜 ‘삼국사기’를 가짜로 몰았는가?

입력 2016-08-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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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침략’ 정당화 위해 불신론 조장… 광복 70년 흐른 지금도 한국사학계 ‘불신론’ 추종

▲쓰다 소키치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몰았다.
▲쓰다 소키치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몰았다.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장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몰다=일본에서는 19세기 말부터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의 이론적 근거 하나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사료적 가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서기』의 서술 자체가 근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론과 상통함을 발견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 계획적, 조직적으로 파괴, 말살하려고 했다. 그 목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인 것이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1894년 나카 미치요(那珂通世)의 『조선고사고』에서 처음 주장되었고, 이후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에 의해 이른바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이란 미명하에 확증되었다. 쓰다는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다수 나오는 임나일본부가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자, 제국주의 어용학자다운 기발한 발상을 하게 된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모는 방식이다. 이런 황당한 방법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것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일본서기』의 상당 부분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유독 ‘신공황후 삼한정벌’ 기사나 ‘임나일본부’ 기사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수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제국주의 침략사관과 상통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떠받들고 있는 『일본서기』란 어떤 책인가? 일본인들이 『삼국사기』의 사료적 가치를 비판할 때면 언제나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일본서기』다. 『일본서기』는 누구나 아는 대로 왜곡과 허구가 심한 역사서다. 『일본서기』는 특히 고대 일본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계를 크게 왜곡했다. 뿐만 아니라 연대까지 조작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역사서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일본서기』는 10여 명의 국왕이 연달아 100세 이상 140세까지 살았다는 「기(紀)」를 싣고 있는데, 역사서의 기본인 「지(志)」도, 「열전(列傳)」도 없으며, 저자의 서문도, 발문도 없다. 역사서인지 의문이 든 책이다.

일본은 한국고대사를 왜곡하기 위해 그들이 가장 오랜 국왕으로 간주하는 15대 오진(應神) 연대(재위 279~310)에 해당되는 신라의 내물왕(재위 356~402)과 백제의 근초고왕(재위 346~375) 이전의 수백 년간의 『삼국사기』 기사는 모두 부인한다. 또한 삼국에 대한 기술도 『삼국사기』 기사보다 『일본서기』 기사가 더욱 정확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모든 활동은 철저히 『일본서기』의 이념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일본서기』를 일종의 성스러운 신서(神書)로 신봉하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이를 합리적, 객관적으로 연구해서 사실을 규명해야 할 한국인 학자들이 광복 후 70년이 넘도록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여전히 추종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추종하는 한국사학계=현재 아흔이 넘은 노교수 최재석은 일본이 패전 후에도 이런 비학문적인 언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인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질타하고 있다.

이병도를 필두로 김철준, 이홍직, 이기백, 이기동, 문경현을 거쳐 김현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왜곡시킨 한국고대사 및 고대 한일관계사를 거의 그대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사학 극복에 앞장서야 마땅한 한국사학계에서 오히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데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을 고칠 까닭이 있겠는가?”(8쪽)

최근 재간된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2016) 머리말에 실린 노교수의 질타는 한국사학계가 깊이 마음에 새겨야할 것이다.

조선사편수회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 교수로도 재직했던 스에마쓰 야스키즈(末松保和)는 쓰다 소키치의 뒤를 이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일제 패전 후 귀국해 임나의 강역을 기존의 경상도에서 전라도 및 충청도까지 확대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용섭 교수의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걸으면서』(2011)를 보면 스에마쓰는 해방 후까지도 한국에 건너와 한국 사학계를 뒤에서 조종했던 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현구 교수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책에서도 스에마쓰의 학문적 권위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에마쓰의 주장이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507~562년의 50년간 『일본서기』에 보이는 야마토 정권과 한반도 각국의 인적 물적 교류를 살펴보면 야마토 조정과 한반도 각국의 관계는 자연히 밝혀지리라 생각된다.”

즉 김현구는 스에마쓰의 논리를 검토한다는 명목하에 『일본서기』의 권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서기』가 왜곡과 과장이 많은 역사서라고 하면서도 쓰다 소키치나 스에마쓰 야스키즈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서기』의 권위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한국 땅에 살아 있는 것이다.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장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장

김병기

단국대에서 학위를 받은 그는 독립신문 사장과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한국독립사》의 저자인 조부 김승학과 《한국민족총사고》의 저자이자 부친 김계업 선생에 이어 3대째 역사의 가학을 잇고 있다. 대한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식민사관과 사대사상을 넘어선 한국사 본류 찾기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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