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신영자 ‘호모 사피엔스 페쿠니오수스’-부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말이 된단다

입력 2016-07-0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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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롯데그룹 신영자 씨가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도대체 뭔 돈이 또 필요했을까?’ 그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도록 하고 구치소로 들어갔다. 전에도 이런 질문을 불러일으킨, 치사한 부자들이 많았지만 신 씨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 스펙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씨의 장녀 아닌가?

보도에 따르면 그는 롯데그룹 87개 계열사 중 18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1900억 원이다. 부동산 등등을 합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더 이상 돈벌이에 안 나서도 평생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 최상류층 부자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최소한 30억 원이라는 뒷돈을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들에서 뜯어냈으며, 자신의 업체에서 4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불려나왔다. 그가 뜯어내고 빼돌린 돈이 결국은 소비자 부담으로, 우리 모두가 그의 탐욕의 희생물이 된 것이 분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나의 관심은 ‘도대체 왜 또 뭔 돈이 필요한가?’이다.

1주일에 한 번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은 800만 명이다. 그들은 ‘인생 뭐 있나, 한 방이면 되지!’라는 따위의 광고를 보고 몰려든다. 지난주 1등 당첨금은 11억 원이었다. 세금 빼면 7억 원이 약간 넘는다. 7억 원으로 인생 역전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신 씨 같은 부자가 왜 더 많은 돈을 탐할까, 궁금하고 궁금한 것이다. (그러다가 그의 인생도 역전됐다. 영장이 발부돼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다!)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에 그가 한몫 거든 것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다. 며칠 전 신 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상당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담고 있다. 그와 가족들이 어디에 그 돈을 썼는가를 검찰이 밝혀주면 알 수 있겠지. ‘질투’도 원인일 것 같다. 가깝게는 신동주, 신동빈 두 남동생이 자신보다 훨씬 많이 가졌다는 데에 대한 질투, 멀리는 더 큰 재벌가의 다른 여인들보다 내 재산이 작다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74세의 나이에도 더 많은 돈을 탐하게 한 원동력일 거라는 말이다.

부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다니?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된다. 미국과 유럽, 중동의 부자 수십 명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의 행태를 동물행동학적으로 분석, 묘사했던 미국 저널리스트 리차드 코니프는 2002년에 낸 책 ‘부자(원제는 The Natural History of The Riches:A Field Guide)’에서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려는 욕망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어울리는 습성이 있고,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자기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되며 여기서 불타는 질투가 비롯된다고 보았다.

코니프에 따르면, 부자들은 같은 식당을 다니고, 비슷한 수준의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서 살며, 같은 예술품 중개상들로부터 같은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다. 같은 종류의 옷-샤넬, 카르티에, 불가리, 구치 등등-을 입으며 같은 수준의 장신구와 가방을 메고 다닌다. 처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입장하기 위해 줄 서는 것을 싫어하지만 부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빠지는 것은 큰 수치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자들의 리조트로 알려진 하와이 마우이섬의 포시즌스호텔 수영장에 새벽 4시 반이면 억만장자들로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코니프는 또 부자들의 과시욕과 질투를 한 일화를 들어 보여주는데, 두 부자 여인이 매일 화려한 옷과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초고가의 보석 경쟁을 하다가 어느 날 한 여인이 아무런 보석을 달거나 걸지 않고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상대 여인과 주변 사람들은 이 여인이 경쟁을 포기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여인은 자기 하녀에게 상대방 여인이 입는 옷과 비슷한 가격대의 의상과 보석으로 치장시키고 자기 뒤를 따르게 했다. “네 따위가 입은 옷과 보석은 내 하녀가 입는 것이란 말이야”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또 다른 부자 이야기도 있다. 심장질환이 있는 중동 산유국의 한 왕족은 해외여행을 할 때는 항상 황금빛으로 치장한 자가용 비행기 두 대를 띄웠다. 둘 다 보잉747이었다. 한 대로도 충분할 텐데 왜 두 대였나? 뒤따라오는 비행기는 심장병이 도질 경우 이 왕족에게 이식할 심장을 대줄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신 씨가 아무리 많은 돈을 뜯어내도 이런 부자들은 흉내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신 씨와 같은 부패한 행위를 롯데의 임직원들이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위에서 저렇게 돈을 뜯는데 우리라고 못할소냐라는 생각에 면세점과 백화점 쇼핑센터 마트 입점 업체들로부터, 또 건설사의 경우 하도급 업체로부터 뜯어내거나 줘야 할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엔가는 계열사 사장과 고위 임원들이 잡혀가지 않았나? 뒷돈 받은 혐의로!

코니프는 ‘부자’를 ‘호모 사피엔스 페쿠니오수스(Homo Sapiens pecuniosus)’라는 새로운 문화적 아종(亞種)으로 분류하면서 일반인들과 구분했다. ‘페쿠니오수스’는 ‘돈 많은’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그러니까 인류는 ‘보통 인류’와 ‘돈 많은 인류’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신 씨가 저지른 짓을 보면 이런 분류가 맞을 것 같다. 일반인들의 짓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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