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7월 1일 호러스 언더우드-연세대를 설립한 미국인 장로교 선교사

입력 2016-07-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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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호러스 언더우드(1859.7.1~1916.10.12)가 이룬 모든 업적은 오롯이 한국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그를 절절하게 사모했고, 한없이 존경했던 부인 릴리어스 언더우드는 저서 ‘언더우드-조선에 온 첫 번째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의 시작 이야기’에서 남편을 이렇게 평가했다.

호러스 언더우드가 한국어 이름(원두우)을 짓고 한국이 가장 절박하게 필요로 했던 교육사업(연세대 설립)에 진력한 것만 봐도 부인의 평가엔 전혀 과장이 없다. 그는 원래 영국 런던 출신이지만 13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다. 뉴욕대와 뉴브런스위크교회 신학교에서 수학하고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그는 인도적 선교를 결심하고 의학 공부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884년 7월 28일 장로교 선교사로 뽑혔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갑신정변으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일본에 체류하면서 한국어에 매달렸다. 1885년 부활주일인 4월 5일 그는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조선 정부가 선교활동을 불허했기 때문에 그는 일단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濟衆院)에서 물리와 화학을 강의했다. 제중원 시절 영어로 된 ‘조선어 문법’도 발간했다.

이후 선교가 허용되자 1887년 조선 최초의 장로교 교회인 정동교회(현재 새문안교회)를 설립했다. 이어 1900년에는 개신교 양평동교회를 만들었다. 북한 지역도 세 차례 방문해 기독교를 알렸다. 교육사업에도 힘써 예수교학당, 서울구세학당,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를 설립했다. 피어선기념성경학원(현재 평택대학교)에선 교장도 지냈다.

그는 조선의 해방을 마음 깊이 바란 선교사였다. “참고 견딘다면 해방의 날이 올 것”이라고 라디오방송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제는 그를 반일 인사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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