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조의 문제

입력 2016-06-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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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길 사회경제부 기자

한 대형 로펌 변호사의 실제 이야기다. 어느 날 대기업에서 이 변호사를 찾아왔다. 회사 관계자는 소유주 일가 중 한 명의 형사사건 항소심 변호를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했다. 1심에서는 실형이 선고된 사안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기업 관계자는 항소심 재판장과 친분이 두터운 걸 알고 찾아왔다면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전화통화를 해보라고 요구했다. 가까운 사이라고 판단되면 사건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 변호사는 재판장과 막역한 사이였지만, 이 얘기를 듣고 바로 제안을 거절했다. 기업 관계자는 다른 로펌을 찾아갔고, 1심보다 가벼운 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사건 수임을 거절한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후에야 이 얘기를 항소심 재판장에게 전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가끔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특히 거액이 오가는 재벌이 연루된 사건은 '처음엔 누가 맡을 뻔 했다더라'는 풍문이 돌고 돈다. 영화판에서 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 '처음에는 어느 배우에게 시나리오가 갔다더라'는 얘기가 도는 것과 비슷하다.

변호사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의뢰인은 2심에서 나온 결론이 재판장과 친한 변호사를 선임한 덕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항소심은 재판장이 양형에 관해 재량을 행사해서가 아니라 법리해석이 1심과 달라 일부 혐의 부분에 무죄가 선고됐다.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가 13일 법정에 섰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로부터 총 100억원을 '재판부 로비 명목'으로 받은 혐의의 피고인 신분이었다. 재판장과의 친분 검증을 요구받고 사건 수임을 거절한 변호사가 있는 반면, 자신이 전관인 점을 내세워 거액을 받아간 변호사도 있다.

때로는 개인의 양심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해결되는 문제도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판사 출신의 서기호 의원의 제안을 포함해 총8건의 전관예우 방지 법안이 발의됐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사건 수임을 폭넓게 제한하는 한편, '전화 변론'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형사처벌규정도 뒀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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