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의 인사이트] 길국장ㆍ길과장 이어 ‘길사무관’까지?

입력 2016-04-12 11:56 수정 2016-04-1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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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세종시에 있는 정부부처의 A실장은 최근 난감한 일을 겪었다. 부처 1급 회의가 갑자기 서울에서 잡혔기 때문이다. 본인만 제외하고 다른 1급 공무원들이 모두 서울에 있다 보니 생긴 일이다. A실장은 가급적 세종에 머무르라는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 오히려 세종을 지킨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여야가 4·13 총선을 앞두고 일제히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회는 서울, 행정부는 세종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행정력 낭비가 심각하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공무원들이 비단 국회 업무 때문에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느라 길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행정자치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주요 행정부처가 아직도 수도권에 남아 있는 영향도 크다.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부처 간 업무 협업이 많아지면서 장·차관은 물론 실·국장, 과장들까지 서울 출장이 빈번해졌다.

국무총리도 대부분 서울에 머무르다 보니 총리 주재 관계부처 회의도 으레 서울에서 열리기 일쑤다. 총리 주재 국무회의는 세종-서울 영상회의로 진행되지만, 매월 부처 간 협업 안건을 조정해 결정하는 총리 주재의 국가정책 조정회의는 주로 정부 서울청사에서만 열린다. 황교안 총리 지시에 따라 지난해 12월 열린 국가정책 조정회의는 최초로 세종-서울 간 영상회의로 진행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단 한 번도 영상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정부 부처 내에 영상으로 각종 회의를 개최하는 ‘디지털 행정문화’를 구현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무색한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무관 이하 직원들마저 대면 보고를 위해 툭하면 서울로 불려다닌다. 서면이나 원격화상, 전자결재는 활용성이 떨어지는 데다, 상위직급으로 갈수록 대면 보고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관가 주변에서 서울과 세종을 오가느라 일주일에 2~3일을 길에서 보내는 ‘길과장’, ‘길국장’에 이어 ‘길사무관’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간부 공무원들의 서울행은 단순히 업무 비효율성 양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실국장, 과장급들이 세종청사의 직원을 교육할 시간이 없어 보고서의 질이 저하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세종이라는 섬에 갇힌 직원들은 민간전문가나 현장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없어 현장 감각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를 가동하기로 했다. 내부 공무원 사이 혹은 민간전문가와 회의할 때 세종청사의 사무관 이하 직원들도 화상회의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5월까지 광화문 청사와 국회, 세종지역에 화상회의 시설도 확충할 예정이다. 보고서 작성을 직접 지도하기 위해 국과장들이 세종에 체류하는 시간을 될 수 있는 한 늘리도록 했다.

이러한 시도는 좋다. 하지만 과거에도 영상 회의실을 마련해 화상 회의를 독려하고, 국토교통부에서는 ‘길 위의 과장’을 없애겠다’는 선언까지 했지만 많은 공무원들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국회와 잔여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하기만을 기다리기에는 공무원들은 너무 지쳐 있다. 영상 회의를 적극 활용하고 대면 보고 문화를 개선하려는 공무원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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