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조훈현에 대한 하수의 생각

입력 2016-02-0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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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조훈현 9단은 지난해 6월 발간한 ‘고수의 생각법’이라는 에세이집에서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더 멀리 예측하라 등 ‘고수의 생각법칙 10’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가 지금 정계 진출 여부로 고민 중인 것 같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대 총선 인재로 ‘피겨여왕’ 김연아를 영입하려다 거절당한 뒤 산악인 엄홍길씨와 바둑기사 조훈현 9단을 끌어들이려고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 9단의 반응은 “아직은 어느 쪽으로도 입장이 정해진 게 없다”, “마음의 결정이 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것이다. 전신(戰神) 화염방사기라는 별명대로 전투에 능하고, ‘제비’,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으로 묘사되는 속력행마의 바둑황제도 결단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조 9단의 부인 정미화씨는 한 종편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의향이 전혀 없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며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깊이 고민하고 오래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이 없는 게 아닌 것이다.

그가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들어가면 바둑기사로는 최초의 국회의원이 된다. ‘바둑황제’는 ‘기사의원’으로서 우리나라 바둑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정계 입문을 검토하고, 주변의 인사들이 권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두드러진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새누리당의 인재 영입 생색내기에 일조하는 데 그칠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분야든 비례대표로 정치판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정책 개발과 지원을 지향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정치판은 단순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은 곳이다.

소전 손재형(1903~1981)은 서예 발전을 위해 힘쓴 서단의 원로였고, 끈질긴 노력 끝에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일본에서 되찾아온 분이다. 그런 그가 자유당 민의원(1958~1960), 박정희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특별고문(1967)을 거쳐 제8대 의원(1971~1975)이 된 경력을 많은 사람들이 옥에 티로 여기고 있다. 서예의 길과 정치의 길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예 발전을 위한 의원 손재형의 기여가 기대 이하였던 점도 그런 평가를 하게 만들었다.

조 9단의 경우도 바둑의 길과 정치의 길은 같지 않다. 게다가 조 9단 영입은 새누리당의 지도부가 정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자칫하면 명성에 흠만 가고 욕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세례 요한의 자세’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입문하거나 자신이 종사해온 분야의 이익 수호와 발전을 위해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좌절한 이들이 있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때만 되면 다시 정치판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은 게 놀랍다.

고소를 많이 해 ‘강고소’로 통하는 강용석씨는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한시도 정치를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복당을 불허했지만 그는 어떻게든 다시 뛰어들 기세다. 고소행태와 튀는 예능활동, 도도맘과의 스캔들 이런 것 모두가 한시도 잊지 않은 정치 때문이었나 보다.

문제는 지명도가 높거나 유명해진 사람이면 정치적 능력이나 이념은 따지지도 않고 경쟁적으로 마구 끌어들이려 하는 정치판의 행태다. 정치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고, 사회 각 부문의 맨 위 꼭대기에 정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오만이다. 지금 19대 국회의원들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세비만 축내는 자들의 행태는 특히 보기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조 9단은 에세이집에서 “내 것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판을 넓게 보는 조 9단이 결단을 내릴 것이고, 그 결정은 전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다만 장고 끝에 악수를 내지 말기를 바라는 게 나와 같은 하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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