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수학] 사람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입력 2015-12-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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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겸 아주대 석좌교수

일본 정부는 2011년에 산업수학 연구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산업수학연구소(IMI)를 규슈(九州)대학에 만들었다. 그 전에 수학분야의 정부 연구소는 교토(京都)의 수리과학연구소(RIMS)밖에 없었는데, 1963년에 설립되어 주로 순수수학 분야의 연구로 이미 필즈상 수상자까지 배출하는 세계적 연구소가 되었다.

후발주자가 늘 그렇듯이, IMI도 잘나가는 큰형님을 보며 차별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을 숙명으로 갖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에 참석한 IMI의 학회는 ‘혁신에서 수학이 갖는 역할과 중요성’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내걸고 있었다. 산업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해서, 주요 강연자의 상당수가 일본은행, IBM, 필립스, Fujitsu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기 회사의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한 사례를 주로 발표했는데, 이런 학회에서 수학자들과 소통하며 종종 새로운 차원의 해결 방안을 찾기도 하므로 혁신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했다.

기초학문에 대한 일본 정부의 투자가 감소해왔고 대학에서 기초학문의 역할을 줄이려는 시도도 잦다고 했다. 대학에서 기초학문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아예 없애려는 움직임을 말하는 것인데, 학령인구 감소라는 변수까지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에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1949년 유가와 히데키(湯川秀樹)의 노벨물리학상 수상과 1954년 고다이라 구니히코(小平邦彦)의 필즈상 수상은 단지 과학 분야의 성취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폐허에서 온 나라가 무기력하던 시절에 다시 몸을 추스르고 재건에 나서라는 국민 통합의 새로운 메시지로 기능했다. 일본 특유의 도제식 학풍과 장인정신에 국가적 투자가 결합되어 다수의 노벨상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곤 하지만, 일본 학자들은 이런 요소는 이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고 냉소하고 있었다.

최근 중국이 중국계 과학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해외 인재 1000명 초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부러움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도 보였다. 이 천인 프로젝트는 정말 통 큰 규모인데, 이미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을 다수 유치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기하학 분야의 전설이 된 티엔 강(田剛) 교수도 이 프로젝트로 매년 9개월을 베이징대학에서 보낸다. 이런 리더들이 중국에 결집해서 다음 세대 인재들을 길러낸다고 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일본 학자들은 우리 정부의 기초과학 지원이 일본 정부보다 적극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분야별 편차는 있겠지만 노력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구축한 공고한 학문적 토대를 생각하면 이들의 불평이 다소 엄살로 받아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규슈 IMI의 초대 소장인 와카야마 마사토(若山正人) 교수는 의외로 응용수학자가 아니라 정수론 분야의 순수수학자였다. 산업을 포함한 세상의 문제를 수학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니 순수수학자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산업계 리더들을 학회에 초청하려 하는 이유 중에는 학회 포스터를 발표하는 대학원생들의 연구를 보여주고 인턴 자리를 구하도록 도와주려는 것도 있었다. 규슈대학은 산업수학연구소 설립 전인 2008년에 대학원생들이 산업에서 나타나는 수학적 문제들을 경험하게 하려고 기업에 인턴 보내기 노력을 시작했는데, 200개 이상의 기업에 인턴십 제공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고도 단 하나의 답신도 받지 못했다고. 대학의 이사회와 주요 보직자들이 개인 연고까지 동원하고 나서야 소수의 인턴 자리를 구했는데, 학생들이 인턴 기간에 대활약을 보인 덕분에 소문이 나서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순수수학 박사과정 학생 한 명은, 인턴 기간에 여러 문제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했을 뿐 아니라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배워서 직접 소프트웨어로 구현했다고 한다. 물론 이 학생은 해당 기업에 특채됐다.

지식의 축적보다 논리적인 생각의 훈련이 창의적 문제해결사를 길러낸다. 이런 인재들이 클 기회를 만들어야 새로운 혁신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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