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노는 법 제대로 배우기

입력 2015-10-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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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25년 전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다니던 회사에 일 년에 열흘 정도의 휴가가 있었다. 거기에 매월 월차 휴가라는 게 있었다. 합치면 20일 정도의 휴가가 있었는데, 내 나이 서른다섯 무렵, 20여 일의 휴가가 늘 부족했다. 그때는 제법 놀 줄도 알았고, 저녁시간 술만 마시며 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여름의 일이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쓰고도 며칠만 더 놀았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회사에 나갔다. 그런데 지난주 함께 휴가를 쓴, 정년을 한두 해 앞둔 나이 든 부장이 한 시간 전에 출근해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휴가 기간 동안 지겨워서 혼이 났다는 것이다. 며칠 설악산에 다녀오긴 했는데, 설악산에 가서도 지겨웠고, 집에 있는 동안에도 지겨웠다고 했다. 그래서 출근도 한 시간이나 서둘러 했단다.

“이렇게 며칠 휴가를 보내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내년에 정년 마치면 그때는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그 생각을 하면 미리부터 머리에 쥐가 나.”

그 사람은 오직 일하는 것만 배웠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면 직장 동료들과 술집에서 놀고, 주말이면 베개를 껴안고 거실 소파에서 뒹굴며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놀지 않는 것도 아니게 노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부장이 있었다. 나이 쉰다섯일 때 다른 부장들은 제대로 놀 줄 몰라 그것을 현금으로 환급받던 연월차가 늘 부족하여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며칠씩 비공식적 휴가를 쓰기도 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회사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친 다음 한 달쯤 집에서 쉬었다.

찾아갔을 때 그는 집 안에서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잘 놀고 있었다. 밀린 독서도 열심히 하고, 음악도 열심히 듣다가 좀이 쑤시면 아들에게 운전을 부탁해 설악산에도 다녀오고, 또 남쪽 지방 어딘가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노는 것만 잘했던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 잘하기로도 아주 소문난 사람이었다.

나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 초기엔 정말 놀 시간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봄에 쌍계사에 벚꽃이 피었다면 내려가고, 나주에 배꽃이 피었다면 내려갔다. 이후에도 주문진에 오징어가 풍어라면 내 마음까지 부풀어 내려가고, 설악에 단풍이 들었다면 그것 역시 빠지지 않고 쫓아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는 일이 예전 같지가 않다. 노는 일이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술로 단순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주 배꽃을 보러 가서도 술을 마시고, 겨울에 대관령의 눈을 보러 가서도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과 술병만 비워 내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이 다음에 저렇게 놀지 말아야지 했던 사람들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노는 데도, 또 휴식을 취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술을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하는 것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그걸 퇴폐적인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제대로 놀지 못해 발생하는 사회비용도 클 것이고, 개인적 손실도 클 것이다.

일하는 법도 잘 배워야 하지만 노는 법도 잘 배워야 한다. 여행을 가서도 배운 것만큼, 또 버릇 들인 것만큼 놀고 오는 것이다. 일하는 것도 문화지만 노는 것이야말로 바로 문화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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