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 ‘보이지 않는 손’과 기업 구조조정

입력 2015-09-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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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은행팀장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부실채권(NPL) 투자회사인 ‘유암코’가 지난 3개월 동안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모델을 만들겠다며 추진한 기업금융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이를 놓고 시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추진했던 정책이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좀비기업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먼저 제기됐다. 반면 처음부터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이제라도 고쳐 끼웠다는 점에서는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실리를 택했다는 반응이 있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시중은행 등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막상 관련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서로 폭탄을 떠넘기는 상황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시각이 설득력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7일 느닷없이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을 백지화했다. 출자금에 부담을 느낀 은행들의 반발 등이 현실적인 배경이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는 시중은행으로부터 출자 1조원, 대출 2조원을 받아 오는 11월 출범할 예정이었다.

당초 은행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 게 화근이었다. 기존의 유암코로도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을 굳이 3조원의 돈이 들어가는 전문회사 설립에 3개월의 시간을 허비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내 기업 구조조정 시장은 채권단이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자율적으로 판단해 구조조정 방식을 결정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정부와 정치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2013년 3차 워크아웃 당시 금융당국과 금융권 고위 인사들로 하여금 채권단에 경남기업을 지원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번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에 우왕좌왕한 금융당국의 모습을 놓고 ‘보이지 않는 손’을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초대 대표이사 선임에 낙하산 인사 우려가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출자금 부담에 반기를 들어 하루아침에 어그러졌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내달 공모를 통해 기관장과 본부장 2명 등 총 3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키로 했다. 여기에는 견제장치인 사외이사를 두지 않기로 해 관치금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같은 관심은 이성규 유암코 사장의 거취로 이어지고 있다. 이 사장은 우리나라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을 확립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실질적인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을 만든 이헌재 사단의 핵심 맴버로,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대우·현대 등 대기업 구조조정에 직접 관여했다. 그래서 이번 유암코의 기능의 확대에 이헌재 사단이 막후에서 그림자 경영을 했다는 시각이 상존한다.

유암코는 앞으로 부실채권 투자 기능 외에 구조조정 기능을 추가로 갖게 됐다. 기존 조직에 기업구조조정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이 추가돼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유암코의 세부전략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의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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