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문(聽聞)' 없는 청문회

입력 2015-09-0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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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길 사회팀 기자

지난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여러모로 흥미를 끌었다.

이 후보자는 서울서부지방법원 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결혼을 받아줄지에 관한 심리를 맡았고, 평소 사형제가 폐지돼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전 질의를 통해 던져진 질문들은 대법관 후보의 성향이나 자질을 검증하는 것과는 무관한 내용들이었다. 위원들의 질의는 대부분 이 후보자가 수천만원 대 헬스장 이용권을 보유하고 있는 점이나 후보자가 주식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얻었다는 부분에 집중됐다. 한 위원은 “주식거래를 한 것이 업무시간이 아니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했고, 다른 위원이 나서서 “전화를 통해 미리 거래를 예약하는 방법도 있다”며 후보자를 거드는 장면도 연출됐다.

물론 대법관 후보자가 청빈한 삶으로 타 법관들의 지표가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청문회의 본질은 말 그대로 ‘청문(聽聞)’하는 데 있다. 청문회의 본질은 후보자의 말을 듣는 데 있는 것이다. 이날 위원들은 방송 생중계가 있는 오전 시간 동안 질문의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의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최고법원의 구성원인 대법관 후보자를 앉혀 놓고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시간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주식거래를 업무시간에 했는지 말았는지에 관해 청문위원들의 공방이 오가는 촌극이 벌어졌다.

오전 질의가 끝나고, TV중계 카메라가 꺼지자 위원들은 그제서야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을 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자는 사형제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과감하게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동성결혼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후보자의 답변시간보다 위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던 점은 오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위원들은 여·야 구분없이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후보자의 생각이 어떠한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문(聽聞)’ 없는 청문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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