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분오열’ 반올림, 잦은 불협화음 삼성 백혈병 문제 해결에 걸림돌

입력 2015-08-10 17:08 수정 2015-08-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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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위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자와 가족위, 반올림 등 백혈병 보상 협상 3주체가 모인 자리에서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gutjy@ 김지영 기자)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올림이 사분오열된 만큼 활동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되고 목적성마저 표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올림, 시작은 사회적 약자 대변= 반올림은 법률, 의학 등 전문지식이 부족한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2007년 11월 발족했다. 사회적 약자 구제라는 선의의 목적으로 시작한 반올림은 현재 백혈병 피해자와 가족 절반 이상이 떠난 목적 불명의 사회단체로 변질됐다.

반올림이 피해자 보상보다 삼성전자와의 대결 구도로 단체를 이끌어감에 따라 타결 직전까지 갔던 협상은 매번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그 결과 백혈병 보상은 8년째 제자리걸음하며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 백혈병 보상의 실타래는 지난해 풀리는 듯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4월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구제 결의안’을 삼성전자에 공식 전달하고, 이후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백혈병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합당한 보상 의지를 밝히면서다.

심 의원은 당시 반올림과 함께 △삼성전자의 반도체 피해자에 대한 사과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 구성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 수립 △정부의 산업재해 인정기준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구제 결의안을 발표했다.

◇번번히 마찰… 일관성 없는 태도로 논란만 가중= 심 의원이 제시한 구제 결의안 내용은 반올림이 찬성 의사를 밝힌, 지난달 23일 발표된 조정위원회의 조정권고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심 의원과 반올림 사이에 잡음이 있었다. 심 의원실은 “삼성전자에게 백혈병 문제를 해결하라는 기자간담회를 열기 전 반올림 등과도 내용을 공유했다”고 말했지만, 반올림 측은 “제3의 중재기구 구성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후 반올림은 독자적으로 삼성전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지난해 5월, 5개월 만에 열린 협상 테이블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참여하며 △사과·보상·재발방지 동시 대화 △회사가 제기한 고소건 해결 △6월 중 3차 대화 일정 확정 등의 세 가지 합의사항이 도출됐다.

제3의 기구가 아닌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양측 간 시각차를 보였던 부분에서 상당한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당시 공유정옥 반올림 교섭단 간사는 “이번 대화에서 반올림과 가족 측의 요구사항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다”면서 만족스럽다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반올림은 또 한번 협상의 판을 깨뜨렸다. 협상 도중 갑자기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 지난해 8월 18일 반올림은 자신들과는 뜻이 다른 6명의 피해자와 가족을 배제한 채 삼성전자 앞에서 모든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삼성전자의 선보상안을 수용한 6명은 반올림으로부터 교섭단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고, 반올림은 삼성전자에 나머지 유족 2명과 함께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전달했다.

이후 9월 열린 7차 대화부터 반올림은 가족위(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와 둘로 나뉘어 지금까지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반복되는 불협화음, 본래 목적 상실한 반올림= 반올림은 둘로 나눠진 순간부터 삼성 백혈병 보상 협상 단체로서의 지위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설립 목적이 '백혈병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의 사회적 책임 수행 및 장기적 재발방지책 마련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여야 했다. 반올림은 피해자와 가족 대부분이 신속한 보상을 원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과와 재발방지책 등을 우선 순위에 두면서 스스로 존재 근거를 약화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제3의 기구를 반대했던 반올림은 최근 진보 성향의 김지형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외부 중재 기구인 조정위의 조정안에는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황상기씨와 김시녀씨 등 반올림 내 유족 대표 2인이 조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반올림은 다시 한 번 분열됐다. 황씨는 8일 반올림 홈페이지에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조정안을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황씨는 “황상기, 김시녀는 7월 23일 조정위원회에서 낸 보상권고안을 거부한다”며 “피해자 마음을 담지 못한 조정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삼성은 피해자 노동력 상실분을 충분히 반영한 협상안을 마련해 피해자와 직접 대화에 임하기 바란다”고 조정안의 원점 검토를 시사했다.

이어 황씨는 반올림 내분 논란을 의식한 듯 10일 “황상기와 김시녀가 이 카페에 올린 글은 반올림과의 불화나 조정위를 거부하는 글은 아니다”며 “조정위 보상안이 너무 작고 많은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보상안을 현실에 맞게 올리라는 뜻이며 삼성은 피해자 구제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반올림이 불협화음과 이탈을 반복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탓이다. 보상을 원하는 다수의 피해자를 외면하고, 국내외적으로 선례가 없는 화학물질 정보공개와 외부 조직의 작업장 조사 등 곁가지에 주력하면서 보상 문제는 뒷전이 됐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물론 묻혀버릴 수 있었던 반도체 근로자들의 건강과 인권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점,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가 근로자 작업 환경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한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백혈병 피해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목적을 져버린 단체의 활동은 그 정당성과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 1000억원 규모의 사내기금 조성을 통해 협력 업체 직원까지 보상하겠다고 조정안의 상당 부분을 수용했다. 협상은 서로 간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 지금은 한 발짝 물러나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책을 내놓을 시점이다.

반올림이 초심을 잊지 않는다면 8년여간 보상을 기다려온 피해자와 가족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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