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가락시장 유통 개선 지금이 적기다

입력 2015-07-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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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지난 9일 우리나라의 대표적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농수산물 공영 도매시장에서의 동반성장’이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마침 가락시장은 개장 30주년을 맞아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현대화 사업이 한창이었다.

현재 가락시장은 대형 유통업체,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과 투기성 자본의 유입 등으로 거래량이 정체되는 등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포럼은 가락시장 등 농수산물 공영 도매시장의 유통구조에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등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가락시장 중도매인들이 주장한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품목이 다양하고 주식과 달리 현물로 거래되는 농수산물을 의무적으로 경매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하는 공영 도매시장 유통구조는 변화된 환경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영 도매시장에서는 경매를 통해서만 농수산물을 거래할 수 있다. 이 같은 의무상장 경매로 농산물의 출하단위별 총가격에서 경매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 또한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로 볼 때 소수의 경매법인에만 수탁판매를 독점시키는 것은 자유시장 경쟁체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 등이다.

이를 시정할 법과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16년 전에 ‘시장도매인’이라는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공영 도매시장 관리주체인 서울시가 도매시장 일부에 경매가 아닌 수의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업무규정의 승인권을 갖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공영 도매시장의 독점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연간 4조원에 이르는 농수산물 거래에서 독점적으로 경매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경매법인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의 주제 발표자나 토론자는 물론 당사자인 유통 상인들도 ‘시장도매인’을 전면 시행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미 법률에 도입된 제도이니 정부가 이를 불허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경매법인과 시장도매인이 경쟁하는 체제가 만들어진다면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나쁠 것은 없다. 농어민은 자신이 생산한 농수산물의 출하처를 선택할 기회가 확대돼 좀 더 좋은 값에 팔 수 있고, 소비자는 유통비용이 절감되므로 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수입 농수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형 할인마트는 수입 농수산물을 경매를 거치지 않고 항구에서 영업점으로 직접 수집해 운반하므로 상대적으로 소매가격이 저렴하다. 그런데 공영 도매시장에 반입되면, 의무적으로 경매를 거쳐 소매점에 유통되므로 물류비 등이 추가로 발생해 대형 할인마트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의 부담만 커진다.

2003년 3월에 있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확정 판결은 이러한 경매법인의 역할을 분명히 제한하고 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서울특별시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경매법인 간, 출하자 간 또는 중도매인 간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다시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판결했다. 이런 결정과 함께 과징금까지 부과되었지만, 지금까지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생산자인 농어민과 소비자인 구매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유통주체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이 없는 독점은 언제나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관계당국은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에 맞춰 현행 경매제를 유지하면서도 일부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해 상호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중소 유통상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그것이 공영 도매시장을 활성화시키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대형 경매법인과 중소 유통상인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의 길이다.

또한 개혁을 하려면 시설 현대화 작업이 한창인 지금이 적기다. 시장의 유통시스템에 따라 재건축 과정에서 공간과 시설이 재배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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