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패러디의 기쁨을 아는 몸

입력 2015-06-2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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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요즘 한국인들은 패러디의 기쁨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누가 이렇게 어문감각을 갑자기 새롭게 해 주었을까? 소설가 신경숙과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 표절 시비가 빚어진 신경숙의 문장을 패러디한 글과, 박 대통령의 말을 흉내 낸 이른바 ‘그네체’ 어법이 유행하고 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양심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들의 베끼기는 격렬하였다. 출판사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원고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채근하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 표절을 하고 두 달 뒤 남짓, 여자는 벌써 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하략)”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한 신경숙의 ‘전설’을 패러디한 문장이다. 글을 읽고 원본이 궁금해지면 패러디, 원본을 감추면 표절이라던가? 이게 아마 패러디 1호인 것 같다. 그 뒤 다른 것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딴지일보에는 ‘[단독]딴지 신입기자, 신경숙 작가 소설 표절 의혹 파문’이라는 글이 올라 있다. 신입기자 코코아를 등장시켜 신경숙과 창비 해명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글이다. 코코아 기자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표절해 ‘엄마를 부축해’를 썼다고 한다.

신씨의 두 번째 사과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화법과 비교되고 있다. “죄송하다가 아니라 표절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니. 대작가가 따라 할 게 없어 박근혜 어법을 따라 하나” 하는 식이다.

온라인 웹진 ‘직썰’은 ‘제1회 그네문학상’을 공모, 24일 당선작을 발표했다. 주제와 분량은 자유이지만 형식은 ‘그네체’를 쓰는 조건이다. 입상작은 이런 것들이다. “메르스로 국가가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저의 화법을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야가 합의해서 투명하게 처리해야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된다는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입상하지 못한다고 해도 글을 쓰는 것은 앞으로 우주로 나가거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되기 때문에 저는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함께해 온 대통령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제가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또 “인생은 나그네길, 길면 기찬데 기가 찰 만한 일들을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가는 것은 제가 알겠어요. 또 기차는 빠르니까 경제성장을 빨리 이렇게 이뤄서 가고, 빠르면 비행긴데 이건 미국 순방 갈 때 타고 갑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디 가서 방명록에 뭘 쓸 때마다 맞춤법이 틀리고 어법이 안 맞아 놀림감이 됐는데, 지금 박 대통령은 조리가 잘 닿지 않는 말을 자주 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걸핏하면 그네체로 말하는 동생이 미친 것 같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도 있다. 밥 먹으라고 하면 “밥 먹는 것은 하나하나 진상조사를 하며 에너지를 채우다 보면 그 과정 속에서 투명하게 처리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알겠다” 이런다는 것이다. 아침에 깨우면 “일어나는 것의 자유는 민주주의 속에서 하나하나 속을 파헤치다 보면 자유가 될 것으로 올해의 목표가 된다”고 했다.

그네체의 유행을 없애는 확실한 방법은 박 대통령 자신이 그네체 공모에 참여해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웃는 건데,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공상이겠지? 아니지. 그네체를 없애려면 대통령의 ‘말씀자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우리말 우리글에 틀림이 없게 더 분발해야 한다.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기에 대통령의 말을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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