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신경숙의 ‘내 독자들’은 누구?

입력 2015-06-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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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안도현은 간장게장을 못 먹게 만든 ‘괘씸한’ 시인이다. 그의 시 ‘스며드는 것’을 읽는다.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시를 읽으면 간장게장을 먹고 싶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난 왜 이런 걸 쓰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서 글을 훔치고 싶고 빼앗고 싶어진다.

당의 시인 유희이(劉希夷)는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사람은 매년 달라져가는구나’[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고 읊은 사람이다. 제목은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그런데 장인 송지문(宋之問)이 감탄한 나머지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하인을 시켜 사위를 죽여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책에는 송지문의 작품으로 실려 있다.

목숨까지 빼앗을 만큼 좋은 글을 탐하는 것은 글 쓰는 이들의 생리이며 본능이다. 송의 구양 수는 누가 좋은 글을 가져오면 무릎을 치며 “어디서 얻어왔느냐?”[何處得來]고 묻곤 했다. 감탄과 부러움을 표하면서, 혹시 표절이 아니냐고 의심한 것 같다.

습작 시절에 남의 글을 많이 베껴 써본 사람들은 오래 익히거나 외운 글이 나중엔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편집한다.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닌 표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가 신경숙의 경우는 그런 정도를 넘어섰다. 체화한 남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유로(流露)된 게 아니다. 표절을 폭로한 이응준씨의 표현대로 ‘(남의)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 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

해명은 더 문제다. “이런 소란을 겪게 돼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게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라니? 특히 ‘(풍파를 함께 해온) 내 독자’라는 말,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내 독자에게는 표절도 괜찮다는 걸까? 어떤 경우든 내 독자는 날 사랑하라는 호소 내지는 사주인가? 그런 사람들이 대체 누구지?

부분보다 작품 전체를 봐야 한다며 신씨를 두둔했다가 사과한 창작과비평사도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창작과비평이 아닌 표절과두둔”, “빵 한 개를 훔친 건 도둑질이 아니고 편의점 전체를 훔쳐야 도둑질이냐?” 등등. 그런데 언제부터 문인들도 이렇게 기획사 뒤에 숨는 연예인처럼 행동하게 된 걸까? 출판사를 통하지 않으면 통화하기도 어려운 작가가 많고, 신씨도 그중 한 명이라더니.

한 문학단체 간부는 “표절 여부는 논외로 하고 한국문학이 이만 한 작가를 만들어낸 데는 엄청난 공이 들었다. 해외에서 이만큼 알려진 작가는 고은 시인 외에 신경숙이 처음이므로 이 귀함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런 눈먼 두둔과 억지 변호가 한국문학, 나아가 한국사회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걸 왜 모를까?

메르스에 무더위에 가뭄에 표절 논란에…에이 참, 정말 안 즐거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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