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소비가 미덕인가 절약이 미덕인가?

입력 2015-04-17 10:54 수정 2015-05-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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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소비가 미덕인가, 아니면 절약 또는 저축이 미덕인가? 경제학원론 시간에 마주치는 명제 중 하나이다. 개인 차원에서의 우리는 모두 절약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적어도 케인스라는 대경제학자가 나타나서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는 명제를 처음으로 언급할 때까지는.

즉, ‘절약의 역설’이란 비록 절약이 미덕이라 할지라도,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소비를 감소시켜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논리인데, 이처럼 개별적으로는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틀린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이라고도 불리는 명제이다.

케인스는 따라서 대공황을 일으킨 원인으로 ‘절약의 역설’을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미덕’임을 강조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오늘날에도 ‘소비가 미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현재도 여전히 수출로 먹고사는 수출의존형 경제이기 때문이다. 또 수출의존형 경제라는 의미 자체가, 우리는 절약해 수출한 결과 다른 나라의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모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식이 이럴진대, 과거 우리의 선조는 ‘절약’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 명약관화하다. 즉 전통적인 농경사회인 데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경우, ‘근검’과 ‘절약’이 당연히 덕목으로 강조되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이단아가 존재하듯, 조선시대 실학자로 유명한 박제가(朴齊家)에게서 우리는 놀라운 경제사상을 발견한다. 그가 저술한 실학서(實學書) ‘북학의’(北學議) 내편(內篇) 시정편(市井篇)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술이 나온다(안대회 역주 ‘북학의’에서 전재).

“우리는 중국의 주택, 수레와 말, 색채와 비단이 화려한 것을 보고서는 대뜸 ‘사치가 너무 심하다!’라고 말해 버린다. 그러나 중국이 사치로 망한다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 탓에 쇠퇴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물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는 것을 검소함이라고 일컫지, 자기에게 물건이 없어 쓰지 못하는 것을 검소함이라 일컫지는 않는다… 재물은 비유하자면 우물이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버린다. 마찬가지로 비단옷을 입지 않으니 우리나라에서는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로 여성의 기술이 피폐해졌다. 조잡한 그릇을 트집 잡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숭상하지 않기에, 나라에는 공장(工匠)과 도공(陶工), 풀무장이가 할 일이 사라졌고, 그 결과 기술이 사라졌다.”

위의 글을 케인스 식으로 읽자면 ‘유효 수요의 부족이 투자 위축을 부르고, 투자 수요의 위축이 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소비를 일으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유통’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있다면 그 나머지는 모조리 쓸데없는 물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쓸모없는 물건을 활용해 쓸모 있는 물건을 유통시키고 거래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쓸모 있다는 물건은 대부분 한 곳에 묶여서 유통되지 않거나 그것만이 홀로 쓰여서 고갈되기 쉽다. 따라서 옛날의 성왕(聖王)께서는 보석과 화폐 따위의 물건을 만들어 (유통을 도운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유통기능이 없어) 금이나 은을 가지고도 점포에 들어가서는 떡이나 엿을 사 먹지 못한다… 즉 나라 안에 보물이 있어도 강토 안에서는 유통이 되지 않으므로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 남들은 나날이 부유해지건만 우리는 날마다 가난해지는 이유이다.”

당시 ‘북학의’의 서문을 쓴 서명응(徐命膺)은 박제가를 두고 “기이한 선비[奇士]”라고 일컬었다. 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 ‘재물은 우물(井)과 같아 계속 쓰지 않으면 말라버린다’라는 주장과 시장(市場)의 유통 기능을 강조한 그는 특이한 천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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