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미디어 속 ‘가족’의 홍수 유감

입력 2015-03-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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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지난 학기 공중파 TV의 중견 PD로 활동 중인 제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핫(hot)한 아이템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고개가 갸웃해진다. 20대는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했다 해서 삼포(三抛)세대라 하고, 결혼율은 밑바닥을 모른 채 추락 중인데다, 덩달아 출산율 또한 ‘인구 절벽’이라 불리는 수준에 이르면서, 가족의 ‘극소화(極小化, minimalization)’가 진행 중임이 분명한데, 미디어 속엔 현실에서 사라지고 있는 가족이 범람 중이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을 듯싶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프로그램만 열거해도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우리 결혼했어요’, ‘님과 함께’, ‘나혼자 산다’, ‘자기야’, ‘아빠를 부탁해’ 등등이 있고, 최근 대세라는 먹방, 쿡방의 대표격인 ‘삼시세끼’나 ‘냉장고를 부탁해’도 넓게 보면 가족 이미지와 연결됨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예전 ‘아빠 어디가’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던 무렵, ‘아빠 어디가는 포르노다’란 다소 선정적 제목의 칼럼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유인즉 평범한 아빠들의 일상은 야근에, 회식에,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리는데 한가하게 아들과 여행을 떠나는 TV 속 아빠의 모습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란 점에서, 더불어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들 녀석과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한데, TV 속 보기 좋게 포장된 아빠와 아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한다는 점에서, ‘아빠 어디가’는 포르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하는 엄마들도 ‘아빠 어디가’에 등장하는 아빠들 모두가 전업주부를 아내로 두고 있음을 지적하며 ‘아빠 어디가’를 보면 실상은 ‘엄마가 보인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미디어 속에서 넘쳐나는 가상(假想)의 가족들을 보자니, 가족에 대한 환상이 강화될수록 실제 가족을 바라보는 자괴감이 심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오버랩된다. 90년대 중후반 새로운 아버지상이 부각되던 당시 광고에 등장하는 아버지 이미지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설정되면서 실제 아버지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끝없는 좌절감을 경험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아빠들 대부분은 요리도 척척 잘하고, 아들 딸과 무척이나 재미나게 놀아주는가 하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만물박사이지 않던가.

실상 가족만큼 민감하고도 미묘한 제도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족이란 때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을 말해선 안 되느냐에 대한 규범 및 가치관이 보다 정교하게 발달되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위선(cultural conspiracy)’이라 혹평 받기도 하고, 또 때론 이혼과 재혼이 반복되고, 구타와 폭력, 자살과 중독이 끊이지 않음에도 놀라운 회복력을 발휘해왔다는 점에서 ‘용감한 신세계(New Brave World)’라 지칭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고통의 세계’라 명명하기도 하고 ‘위험한 비즈니스’에 ‘미친 제도’란 오명이 씌워진 적도 있다.

한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가족에 덧씌워진 근거없는 고정관념과 다채로운 환상을 거둬내고, 가족의 민낯을 오롯이 직시하는 것이 가족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즐거운 나의 집’은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목표임이 분명하지만, 부부와 부모자녀 사이에도 갈등과 분노가 폭발하고 미움과 증오가 샘솟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서 공동체이자 애정 공동체이기 이전에 생존 공동체이자 상속 공동체라는 사실도 덮어선 안 될 가족의 현실이요, 부부 사이든 부모 자녀 사이든 성과 세대에 따라 파워가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음 또한 외면해선 안 될 가족의 진실이다.

현실 속 가족은 점차 왜소해지고 있는데 미디어를 타고 가족에 관한 환상과 기대와 바람이 증폭되고 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깊이 성찰해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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