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오늘도 옥상으로 향한다 [이꽃들의 36.5℃]

입력 2015-01-1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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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예로부터 존재했다. 높은 언덕에 숭배하는 신을 모셨고, 성서는 높은 곳을 존엄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2015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그 오랜 의미가 전복됐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 42번이나 등장한 곳은 어디일까. 다름 아닌 옥상이다. 인턴 장그래(임시완)는 한석율(변요한)과 PT면접을 앞두고 견해 차이로 갈등을 폭발시키며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상사인 오상식 차장(이성민)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더할 나위 없었다, YES!’라며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극중 인물들이 속내를 털어놓거나 갈등을 표출하고 봉합하는 곳으로서 기능한 옥상이었다.

실제로 촬영장 속 옥상은 tvN ‘미생 스페셜’에서 드러났듯, 배우와 제작진에게 그야말로 고난의 현장이었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 무거운 촬영 장비를 일일이 옮겨야 했던 스태프의 땀, 영하를 밑도는 날씨 속에서 밤낮 없이 신(Scene)을 소화했던 배우와 연출의 고충이 빛나는 화면 뒤에 숨어있었다.

이처럼 작품의 안팎에서 직장인의 애환을 진정성 있고 세심하게 담아낸 ‘미생’이었기에 옥상신은 시청자의 공감대를 톡톡히 이끌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높은 곳은 신성(神聖)이기보다 지독한 현실 탓에 몸뚱아리가 발가벗겨진 우리의 모습 그 자체다.

▲tvN 드라마 '미생' 촬영지로 쓰인 서울스퀘어 옥상.(사진=이꽃들 기자 flowerslee@)

그 옛 대우빌딩, 현 서울스퀘어 건물에 가본 적 있다. 한국 현대 경제사에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곳이다. 아래로는 서울역이 보이고, 드라마 상으로는 CG처리돼 지워진 호텔, 기업 등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찼다.

제작진은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으나 구식 상사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우빌딩”이라고 밝혔다. 현실에서는 과거 경제 부흥을 이끈 역군이나 지금은 그 위상을 내준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여전히도 웅대한 건물은 그 역설적 존재감을 뽐내며 이를 있게 한 현실의 미생들을 떠오르게 한다.

서울 여의도나 강남이나 직장인은 때로 숨 막히는 사무실을 벗어나 옥상으로 향한다. 담배 몇 개피를 빼어물거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한숨만 내쉬다가는 곳이 바로 옥상이다. 분통이라도 터지는 일이 있으면, “뭐가 보기 드문 청년이라는 겁니까”라고 외친 ‘미생’ 속 장그래처럼 소리라도 쳐본다. 곪아있는 속을 그렇게라도 터뜨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위 아래. 위 위 아래’라고 신나게 외치며 몸을 흔들어대는 노래가 돌풍인 TV화면에서는 채널을 돌리면 아래로 아래로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야 하는 미생들의 현실이 속속 터져나온다. 그렇게 가닿지 않는 목소리라도 낼라치면 오늘도 쉼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굴뚝을 축 쳐진 어깨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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