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렉시트, 그리고 유로존의 원죄

입력 2015-01-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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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온라인뉴스부 뉴스팀장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그리스발 악재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끝자락에서 세계를 강타한 유럽 재정위기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앞선다.

유로존의 약한 고리는 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PIIGS(피그스) 국가에 ‘유로존의 문제아’라는 오명을 안겼다. 그리스·로마 등 유럽 문명의 원류 역시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현대 그리스의 비극은 그리스에 대한 유로존의 특급 대우가 단초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가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것은 1981년. 그리스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스페인보다 먼저였다. 유로존 가입도 독일·프랑스 등 선행한 11개국보다 불과 2년 늦은 2001년이었다.

여기에는 유럽 문명의 원류인 그리스에 대한 유럽인들의 모종의 경의가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2004년 그리스 아테네올림픽 개최는 철학, 예술에서 과학기술까지 그리스 문명의 역사적 무게를 세계에 재확인시키는 장이었다.

하지만 세계가 간과한 것이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여야 한다는 유로존 재정 기준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른바 ‘분식회계’로 재정이 휘청거리면서 그제서야 그리스의 실체에 대한 경고음이 울렸다. 2009년 말 이후 그리스의 국채수익률이 급등하면서 국가 신용등급은 추락했고 부도 가능성의 지표인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의 보증료율도 크게 뛰었다.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연금제도 등 방만한 재정 운영과 유로존 가입으로 대외 차입이 수월해진 것이 위기를 키운 셈이었다. 결국 그리스는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체제의 공동 관리 하에서 재정지원의 대가로 긴축과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탈리아도 그리스와 함께 ‘피그스’ 그룹에 포함됐지만 사정은 다르다. 이탈리아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을 받았지만 재정수지는 그리스만큼 나쁜 편이 아니었기 때문. 오히려 이탈리아의 위기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의 영향이 컸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탈리아는 스스로 유럽 문명의 원류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EU의 출발점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는 프랑스·독일·베네룩스 3국(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과 함께 창설 멤버 6개국 중 하나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유로 창설 멤버에선 제외됐었다. 당시 유로 창설에 신중했던 독일이 2단계론을 표방, 경제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는 이탈리아의 가입을 보류했던 탓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는 독일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강하게 반대, 결국 독일·프랑스·베네룩스 등 초기 멤버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이탈리아를 유로존에 가입시켰다.

스페인은 유로존의 경제 위기와 함께 설상가상 분열 위기까지 겹쳤다. 재정이 가장 풍부한 카탈루냐 주를 둘러싸고 분리독립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지역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화가 호안 미로 등을 등에 업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카탈루냐 주가 분리독립할 경우 스페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스페인과 더불어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의 재정위기도 여전히 심각하다. EU 개혁조약인 ‘리스본조약’이 제정된 포르투갈은 유로존 재정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최초의 나라로 그리스와 함께 대표적인 ‘유로존의 문제아’로 꼽히고 있다.

고대 로마제국과 싸웠던 켈트 문화의 원류 아일랜드도 국제적인 재정 지원으로 연명하는 처지다.

시장은 정직하다. 유럽 문명의 원류이든 유서 깊은 역사든 투자 가치가 없으면 가차없이 등을 돌린다. 애초 유로존 창설은 유럽을 살리고 유로페시미즘을 불식시키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유로포리아도 잠시, ‘뭉치면 살고 흩어지는 죽는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유로존의 방만한 연대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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