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글로벌 기술규제, 또 다른 먹거리다

입력 2014-12-0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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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편에 ‘戰陳之閒,不厭詐僞’(전진지한, 불염사위 : 전쟁 중에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국제사회는 지금 피 말리는 경제전쟁 중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제전쟁은 보이지 않는 트릭과 전략이 무성한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지난달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우리의 경제영토(세계 GDP 중 상대 교역국의 GDP 총합이 차지하는 비율)는 세계 세 번째다. 많은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외 시장이 바로 우리 안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역자유화, 세계화 추세로 상품에 대한 관세, 수입수량제한 등과 같은 전통적인 무역장벽은 감소하고 있다. 반면 표준, 기술규정, 인증 등과 같은 기술규제가 자국의 산업과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장벽으로 자국의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작년의 일이다. 중남미의 한 나라에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수입제품의 에너지효율 측정 표기를 의무화했다. 문제는 에너지효율 시험 및 인증서를 자국의 인증기관에서만 발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러한 기술규제의 명분은 에너지 효율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국제품 수입을 통제하고 인증비용 취득이라는 부가적 경제 이익까지 얻고자 한 것이다. 우리기업의 입장에서는 인증비용의 추가 지출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제품의 세부 기술유출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우리 정부가 해당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 끝에 한국에서 발급한 시험성적서도 인정해 주기로 합의하면서 제품 수출은 무사히 성사되었다. 하지만 6개월이란 시간을 낭비했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로 전달된 기술무역장벽(Technical Barriers to Trade·TBT) 통보문의 수는 13년 기준 1626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기술규제 관련 이슈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기술규제는 생산 원재료뿐만 아니라, 생산제품의 공정 관련 규제까지 담고 있다. 또한 글로벌 규제는 생산활동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비가입국에 대해서는 무역규제까지 수반하는 등 강력한 제재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영토 확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아주 작은 틈새시장(니치마켓)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현재의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기술규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기존 시장까지 놓칠 수 있다. 그러나 기술규제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시장 우위를 선점하고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대할 수 있는 효자가 되기도 한다.

선박 평형수 설비시장을 하나의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배의 균형과 추진력을 위해 평형수가 필요하지만, 화물 선적 이후 버려지는 평형수는 외래 해양생물체가 다른 나라로 유입되면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거나 신종 변종 미생물이 발생할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가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몇몇 기업은 선제적으로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그 결과 평형수 정화처리설비 의무장착이라는 글로벌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 관련 기술의 선점은 물론 새로운 시장 확보가 가능했다.

기업이 공공편익에 기반하여 장기적 수익을 가져오는 환경문제 등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글로벌 기술규제 대응이 불가피한 부분이다. 이에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올해 7월부터 200여명의 전문가를 동원해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등 18개 산업을 대상으로 우리기업 제품이 해외 진출에 애로를 느끼는 글로벌 기술규제를 조사했다. 그리고 글로벌 애로규제를 극복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연구개발 아이템을 도출하였다. 내년부터는 국가기술표준원을 통해 기술개발 지원사업이 시범 시행될 예정이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개발된 기술이 적용된 우리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빛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제품이 우수하다고 해도 현지 규제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시장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목마르기 전에 우물을 파는 지혜로 글로벌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세계 최고의 기술강국과 무역 2조 달러시대가 조기에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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