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사람꽃 그리고 힐링

입력 2014-11-05 17:08 수정 2014-11-06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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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화성 우림유치원 이사장)

1988년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그해. ‘사람꽃’으로 가득한 유아교육 현장에 들어섰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그보다 더 많은 부모를 만났다.

7살 정인이는 한번 들었던 음을 피아노 건반에 정확히 옮겨냈다. 절대음감을 가진 정인이는 도우미 엄마와 단둘이 살던, 피아노를 유난히 좋아하던 키 큰 아이였다.

할아버지와 살던 태영이는 주말에만 찾아오는 엄마아빠를 그리워했다. 똑똑한 태영이는 유치원을 다녔던 3년 동안 한글과 영어, 심지어 일어까지 깨우쳤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내 가슴에 조용히 묻어놓은 아이도 있었다. 몸이 아프다기에 집으로 돌려보냈던 성진이는 6시간 만에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탓에 간이 녹아 내렸다고 했다. 10만명당 1명꼴로 생긴다는, 야속하기만 한 희귀병이었다. 그때 성진이는 고작 6살이었다.

영안실에서 만난 성진이 엄마는 울먹거리는 나를 오히려 위로해 주었다. “성진이는 세상에 내려와 모든 이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갔다”고 “그래서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고 내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성진이가 떠난 가을이면 예쁜 성진이와 성진이 엄마를 기억한다.

처음 유아교육 현장에 들어선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들은 더 똑똑하고 더 명민해졌다. 그만큼 우리 부모의 욕심도 커졌다.

그럼에도 순수한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예닐곱 살 아이들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대해 “사랑은 따뜻해요. 우리 엄마가 따뜻하니까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놀라운 표현력에 때로는 어른들이 더 크게 놀라고는 한다.

더 이상 깨끗할 수 없는 아이들의 눈망울, 그리고 노란 병아리처럼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요즘이다.

김현경(화성 우림유치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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