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단통법ㆍ카톡 감청 논란을 기회로-선년규 미래산업부 부장

입력 2014-10-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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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지인을 만나러 대학로를 찾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길거리에는 초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젊은이와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연극표를 사라는 호객꾼, 거리 중앙을 차지한 노점상은 물론, 온갖 음식점과 술집, 잡화점, 편의점들이 내건 입간판과 인파로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서는 10m도 나아가기 힘들었다.

곡예를 하듯 이리저리 피하면서 걸어가던 중 우연히 서울연극센터라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언뜻 보기에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편안한 책상들이 널찍이 놓여있는 그곳은 한눈에 봐도 밖의 혼란과 상반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에 자신감을 갖고 들어서자 조용하게 깔리는 편안한 음악과 안락함이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데 충분했다. 원가 200원짜리 커피를 몇 천원에 판매하는 매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벽을 메우고 있는 연극이나 희곡 관련 책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필요하면 책을 빌릴 수도 있단다. 전쟁터 속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연극센터는 2007년 혜화동사무소를 이전하면서 터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연극인과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단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거쳐 다시 오픈해 새건물 냄새가 남아있었지만, 상업적인 전쟁터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정신적인 쉼터가 될 것이다.

대학로를 배회하면서 온갖 간판과 소음으로 어지럼증을 일으켰던 눈과 귀가 안정되자, 머리 한편에 속물 근성이 스멀스멀 밀려들어왔다. “대학로라면 땅값이 꽤 나갈텐데, 위치도 좋고, 이곳에 어떤 먹거리 장사를 하면 대박일까?”

여타 공공기관들은 차지하고 있던 부지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수익사업을 벌이거나 매각해 큰 돈을 챙겨왔다. 그 수익금이나 돈이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나마 낫다. 결국 내부 임원들의 연봉을 올리거나 본인들의 혜택을 위해 사용해왔음은 물론이다.

상업적 요지에 속하는 동사무소 터를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서울연극센터로 전환하는 데는 상당한 고심이 따랐을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공공적자로 어렵지 않은 공공기관이 없고, 서울시 역시 많은 채무를 지고 있는 탓이다. 서울연극센터 설립에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겠으나, 시민들의 쉼터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다.

브레이크 없이 가속페달만 있는 자동차는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수익의 극대화만 추구하는 사회구조도 마찬가지다. 거리의 득실거리는 광고판은 이제 공해가 됐으며, 온갖 소비재로 가득찬 가게와 신상품을 사라고 강요하는 텔레비전은 이성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상업주의의 ‘빨리빨리’ 문화는 100만원 육박하는 스마트폰도 6개월마다 교체해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미 현대인의 생활은 정신과 의지에서 우러나오기 힘들어졌다.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지는 석양처럼 기울어져가는 사상이 됐고, ‘인간은 무력하다’는 구호가 힘을 얻고 있다. 상업주의라는 ‘빅 브라더’가 만든 이 같은 현실에서 쉼터가 더 필요한 이유다.

쉼터라 해서 단지 편히 쉬는 곳만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넋 놓고 혼을 뺏기는 곳이야 거리에 넘쳐나지 않는가. 어제를 되돌아보면서 하나하나 되짚어 보완하고 고쳐나가는 방도를 강구하면서, 힘을 얻어 내일을 만들어가는 곳이 쉼터의 올바른 정의일 것이다.

최근 정보통신 분야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단통법이나 카카오톡 감청도 쉼터 없이 질주해온 결과물이다. 급속한 스마트폰 보급과 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이뤄냈지만, 틈틈이 다지지 못한 채 상업적 이용만 앞세우다 보니 섣부르게 된 것이다. 분리공시의 적법성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성급하게 도입한다고 발표했던 점이나, 감청에 대한 용어 정의조차 통일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앞만 보고 달릴 뿐 주변을 살피지 않는 100m 달리기에 견줄 수 있다. 단거리 달리기야 100m든, 200m든 목적지에 들어오면 끝나지만, 사회와 경제는 그만둘 수 없지 않은가.

디지털이 편리를 가져온다는 명분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번 논란을 쉼터로 삼아 스마트폰과 메신저의 부작용이나 역작용은 없는지 단통법과 메시지 감청을 국민들의 생활에 맞게 다시 한번 다질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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