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新‘국제통상 룰’ 제정 나설 때

입력 2023-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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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WTO, 세계경제블록화 지적
‘양자+소다자’ 협력 중요성 커져
블록내 무역질서 회복 서둘러야

주요국의 공급망 정책 목표를 한마디로 하자면 ‘디리스킹(de-risking)’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디리스킹이란, 말 그대로 리스크에 대한 노출 확률을 줄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디리스킹은 특정 국가만의 목표가 아니라 모든 국가의 목표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적으로 약속된 룰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국가들은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교역·투자·협력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특정 국가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 이외에는 신뢰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점점 더 팽배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기술의 자립, 자국산 소재부품장비의 육성, 리쇼어링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신뢰에 기반한 공급망 재편은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의 블록화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전략산업에서 나타나는 해외투자의 블록화를, WTO는 8월 연례보고서에서 세계 교역의 블록화 현상을 지적했다. 교역과 투자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세계 경제는 가치와 신뢰에 기반한 블록화를 막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 정부는 자국 내 산업정책을 통해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를 의도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문제는 이에 수반되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해야 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갈등뿐만 아니라 녹색 전환, 디지털 전환. 그리고 ESG에 대한 강조는 기업들로 하여금 경제적 ‘최소비용’이 아닌 지정학과 지경학을 고려한 ‘최적비용’을 찾도록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최적 비용을 찾아야하는 기업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은 중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동맹국 기업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현재 미국 대중국 전략의 핵심은 ‘제한된 분야의 강력한 통제(small yard high fence)’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 선정한 ‘제한된 분야’에 우리의 주력 산업이 대부분 겹친다는 점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표적으로 첨단반도체와 EV배터리를 포함한 친환경 기술을 견제의 영역으로 언급한 바 있다.

10월17일 미국은 첨단반도체와 AI 관련 중국의 우회로 차단을 위해 ‘성능밀도(performance density)’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도입하며 대중국 견제를 강화했다. 물리적 사양이 아니라 실제 발현하는 성능을 기준으로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미국 포드와 중국 CATL의 EV배터리 파트너십도 최근 잠정 중단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자동차노조의 파업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미 의회의 강경한 대중국 견제 기조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별로 산업구조와 무역구조가 다르다는 점은 경제안보 리스크에 대한 인식의 차와 함께 구체적인 디리스킹 대응책에도 차이를 유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국의 대응책들이 동맹국이나 유사 입장국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조율은 되고 있는 것일까. 경제안보 시대가 막 열렸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기도 힘들 것 같다.

일각에서는 ‘룰에 기반한 질서’를 회복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 룰이 WTO와 같이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순진한 바람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양자협력을 중심으로 한 소다자협력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그 수요를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일본이 우리 반도체 산업을 타깃으로 강화했던 반도체 소재 수출통제의 경우 우리는 WTO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한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2022년 10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산업 수출통제의 경우도 최근 한미 간 협의를 거쳐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Validated End-User) 프로그램을 통해 무제한 예외적용을 받았다.

다음 단계는 아마도 조금 더 협력의 틀을 넓히는 것이다. 하나의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우선 실현 가능한 해결책부터 고려해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블록 내 국가들은 적어도 서로의 정책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룰 도입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블록 간 교역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우선적으로는 블록 내 자유무역 질서가 회복되도록 한국과 같이 자유무역의 큰 수혜를 본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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