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누리] 희한한 졸업식

입력 2020-02-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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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가슴을 적시던 졸업식이 2020년엔 사라졌다. 학생들끼리 축하하는 마음으로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는, 일명 ‘졸업빵’(과하지 않다면 정겹다)도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열린 졸업식에선 마스크를 쓴 교장선생님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졸업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했다. 축하하는 마음은 크지만 악수 대신 손끝만 살짝 잡았다. 지역 인사, 동문회 관계자는커녕 꽃다발을 든 학부모들도 보이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불러온 ‘이상야릇한’ 졸업식 모습이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선 ‘휴대전화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교실에 있던 졸업생들은 휴대전화를 켜고 학교 이름을 검색해 접속했다. 행사장에는 교사, 졸업생, 재학생 대표 20여 명만이 자리했다. 학부모들은 운동장에서 휴대전화 화면으로 아들딸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마음속 울림도 여운도 없는 ‘건조한’ 졸업식 광경이다.

졸업식의 가장 울컥한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때이지 싶다. 재학생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하고 1절을 부르면 졸업생들은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2절을 노래했다. 이 순간 하나둘씩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고, 서로 토닥이다 이내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들도 꾹꾹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진학률이 낮았던 1980년대엔 중학교 졸업을 마지막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자식(특히 딸이 많았다)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엄마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일까. 내게 중학교 졸업식은 아직까지도 애틋함이 남아 있다.

졸업식 노래 하면 ‘석별의 정’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네.” 헤어질 때 부르는 노래답게 곡조가 느려 몹시 애달프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선 ‘졸업식 노래’를, 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선 ‘석별의 정’을 불렀다. 특히 ‘석별의 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애국가 곡조로 사용한 덕에 학부모들도 학생들과 함께 소리 높여 불렀다.

지난달 말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에도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이 비준된 직후였다. 브렉시트 협정 가결을 알리는 의장의 망치 소리가 들리자마자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손을 잡고 ‘석별의 정’을 불렀다. 영국의 ‘유럽연합 졸업식’에 참석한 그들의 표정에선 회한과 아쉬움이 넘쳐났다. 어떤 조직이든 어느 민족이든 작별하는 순간엔 다 슬프고 힘든가 보다.

짐작했듯이 ‘석별의 정’은 우리나라 노래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민요이다. 스코틀랜드의 국민시인 로버트 번즈가 1788년 지은 시에 영국의 작곡가 윌리엄 실드가 그의 오페라 ‘로시나의 서곡’에 이 곡의 멜로디를 가져다 쓴 것이 최초의 음반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그런데 남의 나라 노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나만 그런가?). 아동문학가 강소천(1915∼1963)의 아름다운 번역 덕분이다. ‘스승의 은혜’, ‘유관순’ 등의 노랫말을 쓴 그답게 스코틀랜드 시인의 감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네 감성을 제대로 담아 풀어냈다. 가히 ‘시대적 번역’이라 할 만하다.

원작 ‘Auld Lang Syne’의 뜻이 궁금하다. auld는 old, lang은 long, syne는 since(또는 ago)의 스코틀랜드 방언이란다. 영어로 ‘Old long since’, ‘오래전부터’이다. 이 노래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 국민만은 아닌 듯싶다. 프랑스 국민들도 이별의 슬픔을 다시 만날 기약으로 달래는 가사로 바꿔 부르고 있다. 노래의 애절함이 국경을 넘고 민족을 초월했다.

달라이 라마는 1998년 미국 에모리대학 졸업식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진짜 인생을 시작하라”고 축사를 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일 게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모든 이여,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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