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숙의 참견] 좀 느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연구환경

입력 2019-1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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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신소재공학부 초빙교수

기술자립을 위한 연구개발의 혁신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로 인하여 정부가 기술자립화를 선언하고 대규모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늘 ‘빨리 빨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연구풍토에서 일주일 만에 연구기획 보고서를 완성하기 위해 급조된 기획팀이 작동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음식도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이미 예견된 상황에 대비해 미리 연구기획을 해두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필자의 욕심이라면, 정부가 예산 지원을 약속한 시기부터라도 차근차근 연구팀들이 모여서 이에 대한 준비를 진행할 수는 없을까?

2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경우, 올해 화학상 수상자인 요시노 아키라(아세히카세이사 명예연구원)와 같이 기업 소속의 샐러리맨 연구자도 수상자로 선정될 만큼 산·학·연 전반에 걸쳐 탄탄하게 조성된 연구환경은 부러운 일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연구개발에 장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어 연구자가 소신을 가지고 평생을 자신의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결과이다. 최근 아베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포함시킨 ‘700·700·7’ 사업은 40세 미만의 젊은 연구자 ‘700명’을 뽑아, 연평균 ‘700만엔’에서 최대 1000만엔까지, 7년에서 최장 10년간 지급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우리나라와의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눈여겨 보아야 할 신진연구자 활용 및 지원정책이다(파이넨셜뉴스, 조은효 특파원).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데에는 초등학교부터 2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학위 취득 후에도 정규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박사후 연구과정을 또 거치게 된다. 이렇듯 유년기, 청년기의 대부분 시간을 공부에만 투자한다 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대학의 시간강사 등 고학력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정규 연구직이 되기 위하여 또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아직도 대학, 연구소 등에서 비전임 또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많은 젊은 박사 과학기술인들은 “이럴 줄 알았다면 대학 졸업 후 진작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약학전문대학원 등에 진학할 것을…” 하는 후회 섞인 푸념을 하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에 취업한 후에도 우리는 정해진 목표와 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하여 늘 동분서주해야 한다. 긴 세월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준비해온 신진 과학기술인들이 실제 연구현장에 힘들게 진입하더라도, 시류에 맞게 연구테마를 변경하는 등 연구비 수주에 전력투구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연구풍토를 이제는 좀 짚어보고 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기술개발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필자는 동남아 개도국들을 방문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진행해 온 급추격형 연구의 성과가 오늘날의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졌음을 뚜렷이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현 시점에서, 연구개발이 혁신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에 맞추어 일을 진행하는 단기적 성과 중심의 연구환경을 탈피하여야 한다. 미래 과학기술 발전의 희망인 젊은 연구자들이 꿈을 가지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연구현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공계 연구개발의 특성상 연구비와 인력이 없이는 연구개발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고 6개월 이상 연구를 쉬게 되면 첨단연구 분야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원천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좀 느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며, 이는 체계적, 전략적 정책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자의 끈기와 정부 및 기업의 속도조절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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