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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권의 글로벌 시각] 방위비 분담의 새로운 기준 - 유성룡으로부터 지혜를 얻자

입력 2019-10-18 05:00

전 주핀란드 대사

1990년대 초반 시작된 한미 방위비 분담은 동맹의 강화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담금 협상과 집행 과정에서 늘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쟁점은 분담의 기준과 규모 문제였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원칙을 벗어난 예외적 조치라는 방위비 분담금의 태생적 문제도 있었다. 즉 원래는 안 내기로 했던 돈을 내는 문제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인건비, 군사건설, 군수지원 등 분야를 정해 놓고 일정 비율을 우리가 분담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한미 사이에 합의된 구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자칫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방위비 분담금을 협상할 때 주로 원용된 기준은 공정한 분담이었다. 이 기준은 그런대로 작동을 해왔고, 2004년 협상을 빼고는 연 평균 대략 10% 이내의 비율로 증액되어 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종의 패턴과 예측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몇 배 인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목할 것은 이렇게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도 ‘공정’한 분담이라는 기준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국을 비롯하여 잘사는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해 미국만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공정한 분담이라는 말은 현지 주둔비용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능력을 포함한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합리적 수준에서 분담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독특한 동맹관과 셈법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서 공정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원용되고 있다. 공정하게 하려면 주한미군의 현지비용뿐 아니라 미국이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모든 비용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1592년 왜군이 조선에 쳐들어왔을 때 명나라가 원군을 파병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당시 재상을 지냈던 유성룡이 쓴 징비록과 서애집에는 명군을 지원하는 문제, 즉 일종의 방위비 분담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조정에서 명나라와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던 유성룡이 명군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명군에게 제공할 군량미를 어떻게 조달할지 고민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전쟁 중에 4만 명의 군대를 먹일 식량을 조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명군을 위해 준비해 놓은 군량미를 약탈로부터 지키는 것과 호남에서 올라올 쌀을 명군이 있는 곳으로 운반하는 문제가 핵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군량미를 약탈하려 한 관리에게 곤장을 치게 하여 규율을 세우기도 하고 군량미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계사년 8월 유성룡이 임금에게 올린 서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성룡은 먼저 명나라 군인들의 행패에 대해 조목조목 적고 있다. 술, 밥을 내놓으라고 사람을 때리고, 역참의 말까지 빼앗아 가고, 민가에 소와 말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고도 적었다. 그런데 유성룡은 이어서 명군 총병 유정이 거느린 5000명의 군사는 대부분 강남 출신인 데다가 여름부터 입은 옷이 다 해어져서 벌거숭이 병졸이 많은데 어떻게 홑옷으로 겨울을 넘기겠느냐고 아뢴다. 이어 그는 명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만 리 밖에서 왔으니 우리가 할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노비의 신공으로 받은 포목을 내서 옷을 지어 입도록 하자고 간한다. 이 일을 때맞춰 처리해 명나라 병사들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자는 말도 덧붙인다.

이제 방위비 분담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지속가능한 분담 체계를 만들어 협상 때마다 홍역을 치르고 동맹이 상처를 입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주한미군의 현지비용이 아닌 것까지 포함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실비정산을 하자는 이야기가 되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리가 아는 동맹이 아니다. 다만 현지비용을 어느 범위와 수준에서 부담할지에 대해서는 명나라 병사들의 고충을 미리 살피고 그들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자는 유성룡의 말에 시사점이 있다. ‘공정’이라는 말보다는 주둔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비용을 성의 있게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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