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의 Aim High]부장이 왜 거기서 나와

입력 2018-10-22 15:29 수정 2019-01-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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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시켜. 난 짜장”이라 처음 말한 그 부장님 누가 좀 찾아줬으면 좋겠다. 탕수육 큰 접시로 하나 주문해서 튀김옷 싸대기 한방 날려 주고 싶다.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식 갑분싸 개그 퍼트린 그 부장님도 잡아다 주면 후사하고 싶다.

세상 미친 부장 천지다. 퇴근했는데 업무지시 카톡질, 미세먼지 주의보 뜬 주말에 산행가자니? 스킨십 하자며 불금에 회식하자더니 몸 더듬는 스킨십은 또 무엇?

나쁜 일에는 여지없이 부장님이 등장한다. 갑질에 꼰대질은 일상에 야근도 부장님이 시켰고 성희롱도 부장님이 했단다. 심지어 북미정상회담이 지지부진한 것도 김 모 통일전선‘부장’ 때문이라니 이런 젠장.

발암물질급인 부장님들의 만행은 성수기를 앞두고 있다. 송년회 시즌이 되면 부장력은 만렙을 찍는다. 철지난 삼행시까진 참는다치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놈의 네버엔딩 건배사는 대체 언제 끝나나.

그런데 말입니다(feat. 김상중)...부장님도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그들은 과연 모를까. 알면서도 그런다면 대체 왜 때문일까? 업종별, 회사별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의 부장들은 1970년대 초에 태어나 1990년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언론과 학계에서 이른바 ‘낀세대’로 규정한다. 하지만 정작 부장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신세대’ 혹은 ‘X세대’가 꿈틀댄다.

노는 법을 제법 아는 X세대는 86세대 선배 밑에서 참는 법을 아는 낀세대를 강요받았다. 서태지, 현진영 따라 춤신춤왕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심수봉, 설운도의 가요무대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잘먹나요는 머릿속에만, 밥상머리엔 젓가락질 그 따위면 복나간다는 잔소리가 작렬한다. 반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하면 괜찮을텐데 정작 그리 입고 회사 가면 깔끔하게 책상 빼버릴까 두려움이 앞선다.

계산서 받으면 손부터 떨리는 회식 대신 목젖 떨리게 코골며 잠이나 자고 싶지만 헬조선의 소통은 오직 회식이다. 회식 안하면 무심한 부장, 불통 상사 낙인이 똿. 반복되는 야근은 무능이라던 스탠다드앤푸어스의 조언과 잦은 회의는 망조라는 무디스의 경고는 천조국에서나 가능. 현실 회사는 밤샘 근무가 생산성이요, 마라톤 회의가 브레인스토밍이니 부장님인들 별 수 있나. 아재개그 안 웃긴 거 부장님도 안다. 하지만 상무님, 사장님이 재밌다는데 어쩔.

죄 많은 인생....내가 이러려고 부장을 했나 자괴감 들어도 희망은 버릴 수 없다. 86세대가 민주화를 이뤄냈다면 부장님들은 인간화를 완성할 주역들이다.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일하는 세대, 근면성실보다 집중근무가 효율적이라는 세대를 이끌 첫 리더는 바로 지금의 부장님들이다. 부장님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다른 것임을 이해하고, 관심과 오지랖을 구분할 줄 안다. 86세대에겐 한 발 물러서고, 밀레니얼세대에겐 한 마디 위로하며 끊어진 세상을 이어가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낀세대다.

부장님들 중에는 대학시절 해외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통해 넓디넓은 세상을 둘러 본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선진국에서는 여유를, 저개발국에서는 느림을 접하며 왜 우리만 모두 똑같은 삶을 살아야하는지 의문을 품어본 첫 세대다.

지금은 의사전달자일 뿐인 부장님들은 머지않아 의사결정권자가 된다. 아직은 86세대 눈치 보며 휴가도 칼퇴근도 미뤄두고 있지만, 시간은 그들 편이다. 퇴근한 뒤 카톡하면 처벌한다는 법이 발의됐고, 대통령은 연차를 다 쓰겠단다. 부장님의 흥이라는 것이 폭발할 시대가 머지 않았다. 물론 그 때까지 버텨야 한다. 일단 올해 송년회에 쓸 건배사 다섯 개부터 챙기자. 해외특허 숙취해소 음료와 앞뒤가 똑같은 대리운전은 센스다. 마! 이게 부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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