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구는 죽었심더”…35년 만에 문 닫은 현대중공업 VS 호황 맞은 석유화학

입력 2018-10-0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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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동구 현대중공업 인근 상가 밀집 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story@
▲울산광역시 동구 현대중공업 인근 상가 밀집 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story@

“요즘 동구 쪽으로는 일을 잘 안 나갑니다”

서울에서 SRT를 타고 두 시간가량을 달려 내려간 울산에서 들은 첫 마디였다. 택시운전사인 이규화(52) 씨는 현대중공업으로 가 달라는 말에 “울산에서 16년간 택시를 몰았는데 요 근래 그쪽으로 가는 손님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희망퇴직과 함께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동구로 가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한때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이곳, 울산. 옛 영광이 사라진 오늘날 울산의 현실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감할 수 있었다. 35년 만이라는 현대중공업 해양공장 가동 중단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울산에는 현대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다’던 지역 주민의 말을 증명하듯, 현대중공업의 침체는 이곳 지역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동구의 지역 경기가 상황이 심각했다. 반면 호황을 맞이한 석유화학단지와 사상 최대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에쓰오일의 사택이 있는 남구 쪽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산한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 식품관
▲한산한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 식품관

◇ ‘중공업 불황 직격탄’ 동구, “상권도 부동산도 최악” = “최근 남구와 동구의 분위기는 일반 주민들이 체감할 만큼 확연히 다르다. 두 곳에 현대백화점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이곳 중심으로 중심가가 형성돼 있으니, 한 눈에 분위기를 알고 싶다면 그곳을 찾아가 보라.”

울산 지역 주민인 임재국(27)씨의 조언에 따라 곧장 동구에 있는 현대백화점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를 뻥 뚫린 도로를 달리자 6층 규모의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은 현대중공업과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인근에 호텔과 대형 병원 등 민간 편의시설이 갖춰진 꽤나 큰 상권이었다.

백화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여성의류 간절기 상품 초특가전’, ‘추석 선물 특가 상품전’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현수막 아래에는 각종 세일 상품이 진열된 매대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특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백화점 정문 오른쪽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5년 째 이곳에서 영업을 했다는 유진선(62·가명) 씨는 “여기는 현대중공업 직계가족들이 주요고객이라 현대중공업 사람들이 매출을 좌우하는 곳”이라며 “5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백화점 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찾은 식품관에는 손님 수보다 직원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푸드코트를 찾은 때는 점심시간이었지만 빈 테이블이 대다수였다. 의류, 화장품, 잡화, 쥬얼리 등을 파는 곳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백화점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섰다. 아파트와 각종 편의시설들이 가득한 골목을 걸었다. 인근에는 부동산이 블록마다 있다고 할 만큼 숫자가 많았다. 이들 부동산의 공통점은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가게 유리창과 문 앞에 ‘매매’ ‘급매’가 쓰인 A4용지가 잔뜩 프린트 돼 붙어 있다는 것.

지역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과거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던 당시에는 동구에서 집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정년퇴직 이후 동구 서부동에 공인중개사를 개업한 김용연(80)씨는 “조선, 중공업의 영향으로 동구의 부동산 경기가 말이 아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선주사에서 고용한 슈퍼바이저나 엔지니어, 현대중공업 협력사 직원 등 외국인 근로자들이 감소하면서 공실이 많아졌다”며 “덕분에 3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울산점 인근 거리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story@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울산점 인근 거리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story@

◇ “땡큐, 석유화학” 호황 맞아 생기 도는 남구 = 다음날에는 울산 남구 삼산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울산점을 찾았다. 동구와는 달리 활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임에도 푸드코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기저기 말소리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쉴 새 없이 귓가에 들렸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고, 계산을 하느라 직원들 역시 분주해보였다. 말을 걸기 미안할 정도였다. 한 식품관 매장관리 직원에게 어렵게 말을 건네자 “이정도면 한산한 편이라고 보면 된다”고 짧게 답하고는 다시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잡화 매장에도 여성 손님들이 몰려 있었다. 한 매장에서는 예닐곱 명이 물건을 구경 중이었다. 두 명의 점원들이 고객들을 응대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려 5분가량을 자리에서 기다려 봤으나 틈이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돌아서기로 했다.

하지훈 현대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두 곳의 최근 매출 현황을 묻는 질문에 "매출 규모는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울산 동구의 경우 현대중공업 영향 등으로 신장세가 더디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을 빠져나와 인근 지역에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남편이 화학단지에 근무한다는 정유미(46)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울산의 경우 남구는 화학의 도시, 동구는 조선의 도시라고 보면 된다”며 “최근 남구와 동구의 분위기가 확 다른데, 울산의 경우 기업 경기가 일반 서민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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