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이용한 범죄

입력 2018-09-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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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변호사

▲이수정 변호사.
▲이수정 변호사.
서로의 사랑을 원하는 인간의 욕구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회평균의 일반인이라면 갈비뼈 사이사이가 찌릿찌릿한 그 사랑의 감정을 믿어 보기로 결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순수’해서 쉽게 이용당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형사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받아본 수많은 판결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이용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판결문이다. 조금은 세련됐다고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가 사기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연인이었던 남자가 주는 돈을 받아 썼는데 헤어지고 나니 돈을 갚지 않는다며 고소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나는 정말 사랑했고, 결혼까지 생각했다”, “돈을 마음대로 쓰라고 줄 때는 언제고…”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억울함에 공감하면서 앞뒤 정황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상한 사실들이 튀어나왔다. 아주머니는 나이(실제 나이보다 무려 열네 살이나 어리다고 거짓말했다), 직업, 학력, 재력, 가족관계 등 모든 것을 속이고 남자를 만났다. 남자로부터 1억 6000만 원에 이르는 돈을 받을 때도 다양한 거짓말을 했다. 명백한 사기 사건이었다. 피해회복도 하지 못했고, 동종전과도 있어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형사판결문을 받아보면 ‘양형의 이유’라는 목차로 판사가 형을 정하게 된 이유를 기재해 준다. 보통은 아주 간략하게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 및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형을 정한다’고 되어 있는 정도인데 이 사건은 달랐다. 한 페이지 가득 왜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판사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신분 등을 속이고 피해자에게 접근한 후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이용하여 저지른 것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유독 이 사건과 유사한 사기범죄 사건에 관한 문의·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피해자 측을 고소 대리하기도 하고, 피고인 측을 변호하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에 맞게 변호사로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주는 것이 내 일이지만, 한때는 사랑을 속삭였던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을 증거로 검토하고 있자니 갈비뼈 사이사이의 찌릿찌릿함은 온데간데없고, 지끈거리는 두통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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