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사에라] 세상에 나쁜 주인은 없다

입력 2018-09-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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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이도 눈치 챈 것일까?

하긴, 이상하기도 하겠지. 몽이는 그렇게 멍청한 아이는 아니니까…

폭염이 모두 물러간 9월의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별들은 마치 아이가 실수로 부엌에 엎지른 설탕 가루처럼 사방에서 반짝거렸다. 주위는 어두웠지만, 사물은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말간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교회 주차장 옆 철제 기둥에 묶인 몽이는 낑낑거리며 계속 그에게 다가오려 애썼다. 옆에 놔둔 육포 맛 간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오롯이 그만 바라보았다. 몽이의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가 몽이와 헤어질 마음을 먹은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자취방에 딸린 부엌 한쪽에 놔둔 몽이의 배변판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 분리해보니, 이런, 배변 패드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제야 그는 벌써 며칠째 몽이의 배변 패드를 갈아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싱크대 제일 아래 서랍을 열어 배변 패드를 꺼내려 했으나, 거기에는 빈 비닐봉지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배변 패드뿐만이 아니었다. 몽이의 사료 또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몽이의 샴푸도, 몽이의 개껌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싱크대에 기대 한참 동안 멀거니 앉아 있자, 몽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눈 아래 눈곱이 껴 마치 진물처럼 변한 몽이는 그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가만히 엎드렸다. 힘도 없고, 털도 더 푸석해 보였다. 이제 9년이 된 몰티즈. 몽이는 제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9년 전, 그는 태어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는 몽이를 애견숍에서 30만 원을 주고 집으로 데려왔다. 이동식 케이지와 방석, 하트 모양으로 생긴 인식표와 가지고 놀 수 있는 작은 인형, 통조림 간식까지. 그는 몽이에게 꼭 필요한 것과 그리 필요하지 않은 물품까지, 욕심껏 구입했다. 머리에 씌우는 모자와 겉옷, 심지어 왜 그런 게 있는지 알 수 없는 강아지 배낭까지. 그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를 아내는 말리지 않았다. 그때 결혼 3년차에 접어들고 있던 그들 부부는 2년 가까이 받아오던 인공수정 시술을 막 그만두고 말았다. 돈도 돈이었지만, 실패할 때마다 밀려오는 허탈감과 무력감을 쉬이 이겨내기 어려웠다. 아이 없으면 어때, 자기야.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면 되지, 뭐… 좋잖아, 계속 연애하는 기분이고… 그는 그렇게 아내를, 또 스스로를 위로했다. 몽이는, 어쩌면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한, 진짜 마음을 가리기 위한 알리바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는 쉽게 몽이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교회 주차장 철제 기둥에 묶여 있는 몽이 곁으로 다가갔다. 몽이는 앞발을 들어 그의 정강이에 매달리려 애를 썼다. 그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이게 최선이다, 이게 몽이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이다. 그는 몽이의 머리를 무덤덤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몽이는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다시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제 앞발을 핥았다. 이곳은 교회니까, 사랑을 베푸는 교회이니, 누구든 몽이를 맡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2년 전에 이혼한 그는, 반년 전엔 오랫동안 운영하던 커피전문점마저 정리하고 말았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해 이미 1년 전부터 착실하게 보증금을 깎아 먹던 가게였다. 그는 무력하게 그 모든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되돌리려 애쓰지도 않았고, 막아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바라보듯, 원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딱히 이유라는 것이 있을까?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다면, 그는 막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아내와의 대화는 천천히 사라져갔고,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벽이 되고 말았다. 그러곤 끝. 아내는 가타부타 말없이 그의 곁을 떠났다.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 누구쇼?”

몽이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그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교회 건물에서 나온 한 남자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 저기… 그러니까…”

그는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의 발소리를 듣고 몽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거, 거기 있으면 안 돼요. 이제 새벽기도 오는 사람들 차가 들어올 시간인데.”

남자는, 그와 몽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 후 말했다. 몽이 옆에 놓인 육포 맛 간식도 미간을 웅크려 바라보았다.

“산책을 나왔다가 잠깐 쉰다는 게…”

그는 철제 기둥에서 몽이의 목줄을 풀려고 애썼다. 단단하게 매듭을 지어놓은 줄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묶은 줄 때문에, 자신이 당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름이 뭐예요?”

“네?”

“강아지 이름이 뭐냐구요?”

“아, 네… 몽이라고…”

남자는 혼잣말로 몽이, 몽이, 작게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예순은 족히 넘어 보였다. 눈과 코 주위에 주름이 선명했다.

“나이도 꽤 있어 보이는데, 너무 오래 산책시키지 마요.”

남자가 몽이 옆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그는 남자의 말을 못 들은 척 아무 말 없이 계속 몽이의 줄을 풀려고 애썼다.

“이 나이가 되면 힘들어도 힘든 티 못 내는 경우도 많아요.”

남자는 몽이의 턱 아래를 쓰다듬어 주었다. 몽이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듯 얌전히 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싫어도, 슬퍼도… 늙으면 말을 잘 못해요. 그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지.”

남자는 혼잣말처럼 계속 구시렁거리면서 몽이 앞에 앉아 있었다. 몽이의 목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곧 새벽이었다.

/ 월 1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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