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S] “약가협상 신뢰도 훼손..시대 반영한 제도정비 시급”

입력 2017-11-20 07:36 수정 2017-11-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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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호서대 교수 "타그리소 약가협상, 투명성 등 문제 노출..2006년 제도 도입 이후 신약개발 환경 변화, 위험분담 계약 등 개선 필요성"

지난 7일 아스트라제네카의 항암제 ‘타그리소’가 극적으로 약가협상에 타결,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확정됐다. 지난 8월 14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가협상을 명령한지 86일만이다. 타그리소를 복용하던 환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쾌재를 불렀다. 약가협상에 임했던 보건당국도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듯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물론 환자들이 좋은 약을 싼값에 복용하게 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타그리소의 약가협상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문제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초 약속된 협상기일을 훌쩍 넘긴데다, 동시에 협상을 진행한 약물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했다.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
이종혁 호서대학교 제약공학과 교수(43)는 "타그리소 약가협상 과정에서 협상원칙이 훼손된 부분은 없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향후 약가협상에 대한 신뢰성과 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이종혁 교수는 2011년부터 5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팀에서 직접 협상 업무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약가제도 전문가'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진행됐다.

우선 타그리소의 약가협상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당초 한미약품의 ‘올리타’와 타그리소가 동시에 약가협상에 돌입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60일로 규정된 약가협상 만료일은 10월13일이었다. 한미약품은 일찌감치 올리타의 협상을 타결지었지만 타그리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지속됐고 2차례의 협상 중단을 거쳐 예정보다 25일 늦게 타결했다.

여기에서 타그리소의 약가협상 기간 연장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사실상 60일이라는 약가협상 기간이 무력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향후 건보공단의 협상력 약화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약가협상 지침을 보면 ‘복지부장관이 협상 명령시 협상기간 또는 협상기한을 별도로 명시한 경우 그에 따른다’라는 규정이 있다. 복지부장관의 의도에 따라 협상기한 연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제품은 60일 이내에 타결 또는 결렬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2차례 협상 기간 연장은 타그리소가 최초의 사례다. 협상기간 마감 이후 추가로 협상이 진행되는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 하루 이틀 정도의 막바지 조율 기간만 주어졌다. 이 교수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추측하기 힘들지만 협상기한 60일이 넘었는데도 협상 중단이라는 이유를 들어 20일 이상의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를 노출한다. 향후 다른 신약의 약가협상에서 60일이라는 기간을 강제할 수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타그리소의 경우 복지부장관의 지시에 따라 약가협상을 중단하고 추후 재개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협상 기간이 당초 마감시한보다 25일 연장된 것이나 다름 없다.

이 교수는 "타그리소의 약가협상 내용에 대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아직 타그리소의 보험상한가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올리타보다는 훨씬 비싼 가격으로 책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5일부터 급여 등재된 올리타는 200mg, 400mg 모두 1정당 2만5000원으로 등재됐다. 1일 1회 800mg을 복용하는 권장용량을 적용하면 한달 약값은 150만원 정도다.

올리타와 타그리소 모두 ‘3세대 EGFR TKI 계열’이라는 동일 기전의 약물이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은 적응증도 ‘이전에 EGFR-TKI로 치료 받은 적이 있는 T790M 변이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치료’로 같다.

국내 시판승인도 올리타(2016년 5월13일)와 타그리소(2016년 5월19일)는 유사한 시기에 이뤄졌다. 올리타는 임상2상시험을 완료한 이후 조건부승인을 받았고 타그리소는 임상3상시험을 완료한 이후 시판허가를 받았다는 차이가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적응증을 갖는 올리타와 타그리소가 유사한 시기에 시판 승인을 받으면서 약가협상도 동시에 이뤄졌다. 올리타와 타그리소 모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로부터 급여적정성 평가를 받은 후 건보공단과 약가협상에 돌입했다.

▲신약 평가방법(자료: 이종혁 교수 보건행정학회 발표 자료)
▲신약 평가방법(자료: 이종혁 교수 보건행정학회 발표 자료)

사실 타그리소의 약가협상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올리타 때문이다. 한미약품은 약가협상이 시작되자 당초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일찌감치 협상을 마쳤다. 한미약품이 제시한 올리타의 희망 약가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제시한 타그리소의 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이 예상보다 낮은 수준으로 올리타의 가격을 제시하자, 건보공단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제시한 타그리소의 약가를 수용하기 어렵게 됐다. 동일 계열 약물일 뿐더러 적응증도 똑같은 2개의 약물인데도 큰 격차의 가격으로 책정하는 것은 불합리할 뿐더러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타그리소는 글로벌 임상3상시험을 마친 약물이라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올리타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종혁 교수는 “건보공단은 약가협상 과정에서 신약의 임상적 유용성보다는 건강보험 재정 여건을 고려해 타당한 약가를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심사평가원에서 임상적 유용성을 따져 급여 적정성을 판단했기 때문에 건보공단은 해당 약물이 건강보험 재정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 적절한 약가를 책정하는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올리타와 타그리소의 적응증 및 급여기준이 같고 급여적정성 평가시 임상적 유용성에 차이가 없다고 평가됐다면 타그리소의 약가는 올리타와 유사한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적응증이 같은 두 개의 약물이 약가협상에 돌입했는데 서로 약가 차이가 크다면 약가협상 원칙을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선별등재제도의 핵심은 대체 약물과 가격을 비교해 비용효과적인 약물을 등재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약품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도입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검증된 약물만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선별등재제도를 시행했다. 건보공단의 약가협상지침에 따르면 ‘대체가능 약제의 총 투약비용을 감안한 금액’이라는 항목이 협상 참고가격 중 하나로 명시됐다. 대체제가 있는 약물은 대체제와 비교해 약가를 결정하는 것은 약가협상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다.

올리타와 타그리소의 적응증이 일치하기 때문에 올리타가 타그리소의 대체가능 약제로 분류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입장에선 타그리소의 임상 자료가 더욱 많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주장할 수 있지만 건보공단은 임상 데이터가 아닌 재정 효과를 고려해 타그리소와 올리타를 유사한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타그리소와 올리타는 서로 비교 임상을 진행하지 않아 어떤 약물이 월등한지는 결론이 없다. 심사평가원에서도 두 약물의 급여적정성 평가를 내리면서 특정 약물이 우수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타그리소의 가격과 올리타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타그리소와 올리타의 실제 가격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타그리소와 올리타 모두 위험분담 계약을 통해 일종의 이면 계약을 맺었다. 지난 2013년부터 시행된 위험분담제는 말 그대로 신약의 효능·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Risk)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하는 제도다.

▲위험분담 유형 및 적용범위(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
▲위험분담 유형 및 적용범위(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

위험분담제의 대표적인 유형은 환급형이 있는데, 제약사가 요구하는 신약의 가격이 100원이고 보건당국이 비용과 효과를 감안해 책정한 가격이 60원일 때, 표면 가격은 100원을 인정해주되 차액인 40원을 제약사가 건보공단에 돌려주는 형식이다. 환자들도 100원의 가격으로 처방받고 이후 본인부담금액의 일부를 되돌려 받는다. 위험분담제는 환급형 뿐만 아니라 총액제한형, 환자단위 사용량제한형, 조건부지속치료와 환급형 등이 있다.

위험분담제의 특징은 ‘비밀주의’다. 건보공단과 제약사가 위험분담제를 통한 이면 약가계약을 맺었더라도 해당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표면약가는 100원이라도 실제 약가는 얼마인지는 약가협상 당사자 말고는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올리타와 타그리소 모두 위험분담제가 적용돼 실제 가격은 표면 가격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보건당국과 해당 제약사만이 알고 있다. 두 약물의 가격이 표면가격보다 더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제3자 입장에선 세부 내용을 알아낼 길이 없다.

이 교수는 "위험분담제도가 신약의 환자접근성 향상이라는 측면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장막이 약가제도의 투명성 및 신뢰성을 저하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건보공단과 제약사가 약가제도의 원칙에 위배된 약가협상을 진행했더라도 위험분담제 특성상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극단적으로 환자들의 약물의 급여 등재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제약사가 적정 약가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틸 경우 위험분담제 계약을 통해 비밀리에 보건당국과 제약사가 타협을 할 소지가 있다. 타그리소의 경우 협상기한을 넘어 보험등재가 이뤄졌지만 어떤 조건이 제시됐는지 알 수 없어 특혜 여부에 대한 업계의 의혹만 증폭되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기존 규정 틀에서만 제도를 운영하다보니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발생해 약가협상제도의 원칙이 심각하게 무너진다면 추후 협상에 임하는 제약사들에 규정을 준수하라고 강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위험분담계약 약제 현황(자료: 이종혁 교수 보건행정학회 발표 자료)
▲위험분담계약 약제 현황(자료: 이종혁 교수 보건행정학회 발표 자료)

환경 변화에 따른 약가협상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2006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시행될 당시에는 약품비 절감을 위해 비용효과성을 고려한 신약의 보험급여 등재를 위해 약가협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용효과성만을 기준으로 신약을 등재시킬 경우 등재될 수 있는 신약이 많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신약들은 첨단 바이오테크 기술이 적용된 중증의 항암・희귀질환의 약물들이 대부분이라 현행 선별등재 제도를 통하여 등재시키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를 등재시키려다 보니 원칙에 어긋나는 결정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천명한 터라 보건당국은 중증 질환의 신약 등재에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보험급여 등재가 힘들어도 환자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무리하게 등재를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국내 약가제도의 경우 다양한 국가에서 운영 중인 제도를 도입, 제도 운영 과정에서 일관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현행 약가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원칙이 점차 훼손되고 있는 현실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위기라는 방증이다. 환경 변화에 맞는 제도 개편을 서둘러야 할 때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현 제도상 급여등재가 힘든 약물이 경우 최저가로 등재한 이후 사후 평가를 통해 적정 약가를 책정하는 등 다방면의 사후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모든 약가제도를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만 해결하지 않고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검증되지 않은 신약의 급여등재에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위험분담제의 운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세부 조건을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등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위험분담제는 환자들의 접근성 제고 차원에서 훌륭한 제도이며 향후 대상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불신이 쌓이기 시작하면 균형잡힌 제도 운영이 힘들어진다. 당장 눈 앞의 신약 등재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할 방안을 찾기보다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서도 향후 고가의 신약이 효과적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비전을 고려한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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