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긍정의 열매

입력 2017-08-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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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을 떠난다. ‘북촌’이라는 시집 한 권이 3년의 결과라고 스스로 다독거리며 서운한 마음을 감춘다. 그렇다. 나는 이사를 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제발 그날만은 더위를 견디더라도 비만은 오지 않기를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두컴컴해지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살림살이란 필요하지만 마당으로 끌어낸 모든 것이 숨을 멈춘 것 같기도 하고 내 약점처럼 보이기도 했다. 혼자 사는 살림들이 꺼내 놓으니 너무 많다는 생각에 아무도 몰래 버리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여러 갈등이 비와 함께 내리는 날이다. 살아간다면 필요한 것들이니 바라보면 측은하기도 하다.

그래서 꺼내 놓은 짐들이 넝마 같아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넣고 싶은 마음도 누르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옷이 젖고 내 옷도 젖어가고 있었다. 불편은 점점 심해졌다. 그런데 친구며 후배들이 휴대폰 문자에 축하한다는 글을 계속 올렸다. 비 오는 날 이사를 하면 복이 터지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복이 아니라 돈이 엄청 들어온다고 하니 이사 끝나고 밥이나 사라는 문자도 있었다.

누가 이런 위로(?)의 명언을 만들어 계속 휴대폰을 울리게 하는가. 동네 사람들도 제법 괜찮은 조각도 ‘돌’로만 보이는 짐 덩어리를 바라보며 위로하듯 말했다. “비 내리는 날 이사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잖아요.” 묻지도 않았는데 등을 두드리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대학 두 번 떨어진 사람에게 “더 좋은 일 생기려고…” 하는 것처럼 궁색하게 좋은 말 찾기 운동본부 직원 같은 말들을 참 많이도 쏟아냈다. 한국인을 우울하게 보거나 탄식의 원조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무척이나 긍정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치게 소극적이라 반가운 임을 만났는데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끗” 하는 여인네 마음을 읊었지만 우리나라 고대소설의 주인공들을 보면 시대를 뛰어넘는 강인한 여성성, 아니 인간적 폭탄의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지극히 불편하거나 불행할 때 그리고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의 희망 줄을 놓아 버리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피는 말한다. “우리가 남이가!” 이 말 한마디로 관계를 다잡는다.

한국인들은 고향이 같거나 학연(學緣) 등 인연의 핵심이 촉발하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백년지기(百年知己)로 변하고 숨겨둔 술도 꺼내는 사람들이다. 긍정의 힘은 더 많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으면 팔은 괜찮아 다행이라고 하지 않는가. 팔과 다리를 모두 다치면 목은 괜찮아 다행이라고 하며, 척추를 다치면 머리는 괜찮으니 다행이라고 한다. 이 무서운 긍정의 힘이 바로 한국인의 힘이 아닐까. 날씨 좋은 날 이사를 했으면 문자를 미루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인은 어떤 일을 그르치거나 안 좋아진다고 할 때 정(情)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돈이 들어온다든가, 집에 불이 나면 몇 배 불려서 돈이 들어온다든가, 불편을 겪거나 불행할 때 말을 덤으로 바싹 올려 위로하는 긍정의 힘은 놀라울 뿐이다. 나의 이사와 한국의 모든 일이 그야말로 다행으로 전진(前進)했으면 한다. 이삿날 비가 왔으니 나에겐 돈 들어올 일만 남았다. 한국인의 다행의식(多幸意識), 얼마나 아름다운 힘인가. 그 아름다운 열매의 맛은 각자 노력으로 가득 채워가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햇살 푸짐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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