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대통령의 뮤지컬

입력 2017-05-12 10:27 수정 2017-05-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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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 전공 교수/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

때로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의 대한민국이 그랬다. 그 어떤 픽션 영화나 판타지 소설보다 드라마틱한 현실이 전개됐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서 촛불을 들었고, 경찰차에 꽃 스티커를 붙였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거리 예술가가 되었다. 집회 현장은 평화로운 문화 축제의 장 같았다. 그러나 국가 주권자로서의 바람은 단호했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역사상 최초의 보궐 대선이 현실화했다. 그리고 역대 최다 후보 출마, 최대 표 차이로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국민이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소설보다 판타지 뮤지컬보다 더한 창작의 주인공인 대서사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하자마자 야당 당사를 방문하고 내각 인선을 직접 발표했다. 총무비서관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수석들과 와이셔츠 바람으로 산책도 하고 출근길엔 주민들과 셀카 촬영을 했다. 국민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 대통령의 며칠간의 행보는 사실 상식적인 모습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는 스스로 재킷을 벗었고, 시민들과 포옹했고, 일하기 효율적인 집무실을 선호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야”라고 외치고 있다. 섣부를 수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절대권위의 한국 대통령상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뮤지컬 종사자로서 여전히 부러운 어떤 대통령이 떠오른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마지막 신년 국정 연설을 준비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ONE LAST TIME’이라는 글을 남겼다. 미국 브로드웨이를 발칵 뒤집은 핫한 뮤지컬 ‘해밀턴’을 인용한 것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재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해밀턴 재무장관이 국민의 뜻대로 대통령직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자 사람들에게 이별하는 법도 알게 해 줘야 한다면서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뮤지컬 넘버에 빗대어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을 것이다.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의 건국 시절 정치가의 이야기를 고전 의상과 배경 그대로 재현하며 힙합으로 노래하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음악도 내용도 그 이전의 뮤지컬들을 낡게 만드는 신선한 완성도로 뮤지컬 역사에 한 점을 찍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매료돼 두 번이나 공연장을 찾았고 배우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공연을 보도록 했다. 지난해 ‘해밀턴’이 토니상을 휩쓸 때도 시상식장의 대형 스크린에 미셸 오바마와 동반 등장해 ‘해밀턴’을 극찬했다. 이유 있는 명작에 이유 있는 지지를 보낸 것이다. 누구도 그 행동을 특정 공연에 편파적이라고 질타하지 않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청산하고 문화계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한다. 우리 국민을 감동시키는 한국 뮤지컬을 스스로 선택하고 관객의 눈높이에서 그 뮤지컬을 소신껏 즐기는 모습이시길.

단기간에 급성장해 온 한국 뮤지컬 산업은 지금 전 세계 뮤지컬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고 일본, 중국으로의 진출과 글로벌 합작도 활발하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원아시아 뮤지컬 마켓’을 주도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면 세계적 뮤지컬 강국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가무악(歌舞樂)에 능하고 신명이 많은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 체질에 최적화된 대중종합예술이기에 그 잠재력이 더 크다.

뮤지컬 산업은 태생적으로 융합예술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 폼 미디어 아트 개발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이미 많은 뮤지컬에서 3D 영상 맵핑, 홀로그램, 로봇, 미디어 파사드 등 다양한 기술 접목이 이뤄지고 있다.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구현되는 기술은 관객들에게 판타지 효과를 배가해 준다.

영화 산업과 게임 산업을 국가 정책 산업으로 육성해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경쟁력을 확인했듯 이제 새 정부도 뮤지컬 산업에서 한국 문화 산업의 미래를 내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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