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국판 디트로이트’ 멀지 않았다

입력 2016-12-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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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산업1부장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배경에 미국 제조업의 몰락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제조업 몰락의 상징은 바로 ‘디트로이트’다. 오대호의 하나인 휴론과 이리호를 있는 작은 강의 이름이기도 하다. 1701년 프랑스 장교인 앙투안 드 라 모트 카디약(Antoine de la Mothe Cadillac)이 51명의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세운 강 인근의 마을이 그 시작이다. 미국 고급 차의 대명사 ‘캐딜락’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덕분에 모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이 같은 입지는 1896년 헨리 포드가 자동차 공장을 세운 계기가 됐다. 이어 크라이슬러도 이곳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면서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2차 대전을 계기로 디트로이트는 엄청난 성장 가도를 달렸지만, 1980년대부터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상륙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일본 덕분에 흥하고, 일본 때문에 추락한 셈이다.

중심 산업의 몰락은 중산층이 최하층으로 몰리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3년 포브스는 미국에서 가장 비참한 도시 1위로 디트로이트를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 대선이 끝난 뒤 현지 언론들은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중하위층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주목했다. 제조업 부활을 통한 미국의 부활을 유권자들이 원했다는 분석들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미국의 무역 적자나 재정 적자 때문에 중산층이 어렵다는 분위기가 미국 내에 상당히 팽배해 있지만, 미국이 위기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고립주의와 산업 보호 장벽은 전 세계적인 경기 위축을 유도하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독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또한 4차 산업시대 문턱을 넘고 있는 지금, 제조업의 진흥이 생각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상당수다.

하지만 중국 수입 제품 45% 관세, 멕시코 생산 제품 35% 관세 부과 등, 트럼프 차기 정부의 과격한 정책을 잠시 걷어 내면, 미국의 제조업 살리기 공약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생산 공장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전화를 걸었다. 그간 미국이 추진해왔던 ‘리쇼어링’ 정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기업이 해외로 생산 시설을 옮기는 것을 ‘오프쇼어링(off-shoring)’, 국내로 복귀하는 것을 ‘리쇼어링(re-shoring)’이라 한다. 이미 미국·일본 등은 자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찌감치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우리 정부 역시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에 관한 법률인 ‘유턴기업 지원법’을 제정해 해외 생산 시설의 국내 복귀를 지원했지만, 이 법의 적용을 받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중소기업 80여 곳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돌아온 사례는 LG전자가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의 세탁기 생산 시설 일부를 국내로 옮겨온 것이 유일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제조업의 위기에 몰려 있다. 조선·해운업이 대거 집중된 경남 지역은 이미 수만의 실직자가 양산되고 있으며, 내년에도 구조조정 수위는 더 강도 높게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곧 우리 산업을 이끌어 왔던 중공업 단지가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같은 몰락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한국판 디트로이트 사태’다.

일자리는 줄고 있는데,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은 세계화 전략을 내걸고 글로벌 생산 거점을 외치며 해외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은 돈을 버는데, 국민은 일이 없어 빈곤해지는 상황이다. 기업이 자본 논리에 이윤만 좇는다면, 현재의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도 강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한 때다. 추악한 정치 스캔들로 인한 ‘식물 정부’ 상태가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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