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의 모델은 고대 로마 내전 당시 줄리어스 시저에게 패한 폼페이우스의 아들 또는 게르만 지역을 점령했던 로마군 사령관으로 추정됩니다.
이 흉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주둔했던 미군 병사가 미국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일 바이에른 주 정부는 “사라진 이 흉상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며 반환을 요청했고...
로마 최고의 부호이자 폼페이우스의 정적이었던 ‘크라수스’. 크라수스는 자신의 채권뿐 아니라 카이사르가 다른 사람에게 진 채무에 대해서도 보증을 서줬다고 한다. ‘로마인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두고 “빚의 규모가 작을 때는 채권자가 강자이고 채무자는 약자이지만, 액수가 늘어나면 이 관계가 역전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채무자가 ‘갑’이...
결국 카이사르는 재력가 크라수스, 군 장성 폼페이우스와 손잡고 원로원 세력을 무력화한다. 흔히 말하는 삼두정치의 시작이었다. 카이사르는 당시 국부로 대접받고 있던 키케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키케로는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려 한다며 끝끝내 거절한다.
크라수스가 전사하고, 폼페이우스마저 제거한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 자리에 올라 사실상 1인...
BC 60년대 말~BC 50년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소위 제1차 삼두정치라는 초법적 정치 연대를 이뤄 수년간 로마를 지배했다. 그러자 원로원에서 카토, 비불루스 등 벌족파가 강력히 반발했고 키케로도 힘을 보탰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해 로마제국의 영토를 북해까지 넓히고, 로마에서 처음으로 브리타니아(지금의 영국)를 침공하는 등 혁혁한...
야심이 큰 카이사르는 민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당시 로마시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폼페이우스와 비밀협정을 맺었다. 폼페이우스가 자신의 집정권 선출을 도와준다면 폼페이우스의 부하들에게 농지를 분배하고 폼페이우스가 조직한 오리엔트 재편성안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이미 집정관을 지낸 데다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