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춘택 전 증권감독원장은 청사 신축, 외풍 차단과 같이 증감원의 권위를 높이고자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대 고 홍승희 전 원장이 주춧돌을 놓고 2대 고 박봉환 전 원장이 기둥을 세웠다면 정 전 원장은 증감원에 벽을 두른 셈이다.
정 전 원장의 재임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동화통신 외신부 차장, 재무부 외환국장, 조달청 차장, 외환은행장, 산업은행...
한일 고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대 명예교수가 89세의 나이로 지난 13일 오전 별세했다.
고인은 1950년 교토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부터 30여 년간 동 대학 교수로 몸담았다. 동아시아 역사 속 일본 문화의 뿌리를 찾기 시작한 그는 일본이 왜곡한 한일 고대 교류사의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데 힘썼다. 우에다 교수는 일본의...
증권산업에 있어 1980년대는 상장사의 공시제도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평가된다.
1977년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기업 등록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신규 상장법인의 공개 전 기업공시는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이 전부였다. 일반 투자자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개 예정기업의 기업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개정 거래법은 등록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기업은...
고(故) 박봉환 전 증권감독원 원장은 역대 원장 중 가장 장수한 리더다. 고(故) 홍승희 초대 원장의 뒤를 이어 증권감독원 설립 5년째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7년간 증권시장의 기틀을 잡고자 동분서주했다. 홍 원장이 허허벌판에 감독 전문기구의 토대를 세우고 기업들을 증시로 끌어들였다면 박 원장은 기업들이 건전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증시 생태계를...
정치계 거목인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가 27일 오전 3시 94세 나이로 별세했다.
서울 출신인 이 전 총재는 전주고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전국학생총연맹 대표의장을 지내며 반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4대·5대·8대·9대·10대·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인은 1955년 민주당을...
증권감독원 설립 전 자본시장의 정책과 감독은 당시 재정경제부에서 담당했다. 자연스럽게 초대 홍승희 증권감독원장을 필두로 7명의 증감원장 모두 재무부를 거쳐 간 인물들로 채워졌다.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홍승희 원장과 동화통신 기자로 먼저 일한 정춘택 원장을 제외한 5명이 모두 재무부 출신이다. 홍 원장은 이후 19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60년 자본시장 발전에서 기업공개를 선도적으로 이끈 초대 증권감독원장은 지낸 고(故) 홍승희 전 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증권감독원 초대 원장으로 지내면서 새로운 기구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1977년 2월 증권감독원 초대 원장에 오르기 전에는 산업은행, 외환은행, 해외경제연구소, 해외건설협회 등...
자본주의의 중추기관인 거래소의 수장은 한 나라의 경제체제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60년을 맞은 우리 자본시장은 때로는 시장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때로는 시장에 대한 통제를 위해 대부분 정부출신 인사들이 이사장을 거쳐 갔다. 거래소 내부에서 공채를 통해 양성해 낸 수장은 설립 44년째였던 1999년 취임했던 박창배 전 이사장이 유일하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어떤 산업이 성숙했는지를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을 살펴보는 것이다. 박창배 전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거래소 최초의 내부인사 출신 이사장이다. 증권시장의 중추기관인 거래소 이사장은 이전까지 주로 경제관료 출신들이 앉았던 자리다. 비록 후임 이사장들이 다시 외부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내부승진의 명맥을 잇지는 못했지만...
또한 이 곡의 작사가 '거목'이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공개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차태현의 유명세와 달리 정작 10대와 20대에선 차태현의 노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에 차태현은 "이 노래 정말 모르냐"고 호소에 웃음을 자아냈다.
강성연은 보보로 활동했던 시절 큰 인기를 모았던 '늦은후회'를 열창했다. 강성은은 차태현과 달리...
차태현이 지어준 '거목'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으며, 그간 발매된 작품은 차태현의 1집 타이틀 곡 'I love you'와 2집 타이틀곡인 'Again to me'와 'Love story', 영화 '연애소설 OST '모르나요' 등이 있다.
또 결혼 후에도 차태현의 주연작인 영화 '헬로우고스트' OST '너와 함께' 작사를 맡았다.
한편 9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투유프로젝트-슈가맨'에는 배우...
제작사 측은 “이덕화는 그동안 관록의 배우다운 인자함과 여유로움, 설명이 필요 없는 ‘명불허전’의 묵직한 연기로 ‘장사의 신-객주 2015’의 중심축을 확고히 잡아줬다”며 “조선 최고의 거상, 육의전 대행수다운 현명함과 넓은 식견으로 ‘장사의 신’을 향해 나가고 있는 장혁에게 깨우침을 안겨주는 거목이었다. 이덕화의 죽음이후 혼란한 조선 상권을 지키기...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많은 이들이 추억하는 이른바 ‘리즈시절(전성기)’이 있다. 선진국보다 한참 늦게 뿌리를 내린 국내 파생상품시장이 세계 1위로 도약했던 기간이다. 당시를 회상하는 이들은 선물·옵션의 불모지였던 한국 파생상품 시장을 글로벌 1위로 만들어 낸 일등공신으로 홍인기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 전 이사장...
홍인기 전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국내에 증시가 막 태동하던 1960년대 재무부 이재2과장과 증권보험국장으로 자본시장과 연을 맺은 뒤 동양증권 사장, 동서증권, 한국산업증권 사장을 거쳐 증권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홍 전 이사장의 재임 기간 만들어진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한때 세계 거래량의...
한국거래소가 증권거래소였던 1970~1980년대 재직했던 원로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거래소근무를 아련하게 추억하곤 한다. 거래소의 시장감시기능이 커지고 상장사의 의무가 강화되면서 거래소 직원들의 사기가 한창 충만했던 때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로 직원들은 제도개선을 통해 거래소의 지위를 강화했던 김용갑 전 이사장을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오늘날 주가지수의 등락은 주식투자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일기예보처럼 친숙한 뉴스다. 그만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40여년 전의 주식시장은 극소수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하는 소규모 투기시장에 불과했다. 지금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을 합쳐 약 1500개 기업이 상장돼 있지만 과거에는 상장기업이 몇 개에 불과한 협소한...
부친인 고 김각중 전 경방 명예회장도 1999년 11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에 선임된 이후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전경련 제26대, 27대 회장을 맡은 바 있는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이었다.
1956년 3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한 경방은 1966년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1970년 7월 지금의 상호로 변경했다. 1992년에는 지금의 타임스퀘어 자리에 경방프라자 쇼핑센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된 한국의 자본시장의 역사 또한 국내 자본시장의 태동과 발전을 이끌었던 거목(巨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활약상은 한국 경제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다. 금융투자업계 여러 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자본시장을 움직인 인물들을 꼽아 봤다.
◇한국 자본시장의 산파 ‘증권구락부’와 송대순 전 회장...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원이 14일 오후 4시31분 호흡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31살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7·10·11·12·14·15·16대 의원으로 8선을 지냈다. 특히 두 차례나...
조 변호사님도 기뻐하실 것 같다.”
△‘조영래’라는 거목(巨木)의 의미를 일반인에게 설명한다면.
“크게 두 가지로 소개할 수 있다. 전태일 열사가 72년 분신하면서 주장한 노동권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요건이라도 준수하라는 것이었는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권에서 노동운동을 극심하게 탄압했고, 법에서 정한 근로기준도 지켜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