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불평등이 중산층 해체 초래…경제성장 걸림돌로

입력 2014-10-07 10:22 수정 2014-10-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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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경제연구소 ‘21세기 자본’ 토론회 개최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왼쪽)과 ‘21세기 자본’ 번역 작업에 교열자로 참여한 김동진 전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종로플레이스 문봉교실에서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선대인경제연구소는 지난 2일 저녁 종로플레이스에서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21세기 자본 번역 작업에 교열자로 참여한 김동진 전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함께 했다. 그는 현재 옥스퍼드대 경제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달 중순 피케티 논쟁을 정리한 ‘피케티 패닉’(글항아리) 출간을 앞두고 있다. 토론회에는 연구소 연간 구독회원을 비롯해 일반인 150여명이 참석했는데 중간에 자리를 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문제의 핵심은 불평등의 크기가 아니라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소득불평등이란 노동소득의 불평등과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중 자본소득의 불평등, 즉 부의 불평등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묻는다. 노동소득의 불평등보다 부의 불평등(부동산 임대료, 배당금, 이자 등)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한 국가의 수많은 자료를 통해 부의 불평등이 항상 노동소득 불평등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노동소득 상위 10%가 국가에 따라 전체 노동소득의 25~50%를 받는 반면 자본 소유의 불평등에서 상위 10%는 항상 국부의 50% 이상을 소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케티의 주장이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투데이는 선대인 소장과 김동진 전 애널리스트의 대담을 발췌 정리했다.

◇부의 불평등을 어디까지 정당화할 것인가.

선대인(이하 선): “지금 우리 국민 대부분이 정치,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죠? 그런데 실제 불평등에 대한 언론보도나 연구를 접한 적이 있나요? 최근 20~30년간 경제적으로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하는 수준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정밀하게 분석한 경우는 없었어요. 물론 에마뉴엘 사에즈 등의 학자가 문제를 제기했고, 조셉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을 내며 최근 불평등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지만 경제학계에서 화두를 바꾼 것은 피케티예요.”

김동진(이하 김): “지난 봄 피케티가 백악관과 국제통화기구(IMF)에서 강의를 했어요. IMF에서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불평등이라는 이슈가 단순히 진영 논리가 아니라 성장을 걱정하는 IMF 같은 기구들까지 관심을 갖는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년 전 IMF의 한 연구원이 한시적 자본세를 도입해 각국 정부가 금융위기 이후 늘어난 채무를 해결하자는 내용의 논문을 냈습니다. 개인이 자유롭게 연구한 내용인데도 당시 미 포브스의 칼럼니스트가 자본세 연구를 비판하는 일종의 ‘패닉’이 있었고요. 최근에는 IMF에서 주목해야 할 차세대 경제학자 25명을 선정했는데 그중 한 명이 피케티였어요. OECD와 G20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조세피난처에 대해 국제공조로 대처하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의 불평등이 커지면서 중산층이 해체됐다.

김 : “미국 버클리대학의 들롱 교수는 피케티 열풍이 불평등 양상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와 관계가 있다고 했어요. 지난 한 세대 동안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됐지만 20세기 혁신이라 불리던 중산층이 계속 감소했거든요. 중산층을 쇠퇴시킬 정도의 불평등이 과연 유용한지 피케티는 되묻습니다. 20세기 이후 유럽에서 상위 1%가 소유하는 부의 몫은 20~25%이지만 1세기 이전에는 50%가 넘었어요. 그나마 중산층의 부상과 함께 상위 1%가 차지하는 부의 몫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에요. 피케티가 누진적 자본세를 주장하는 취지는 결국 중산층 해체를 막으려는 생각인데, 이미 쌓여 있는 자본 소유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선: “자본소득 내에서 상위 0.1%와의 격차는 엄청납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해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나라들은 자본소득에서의 불평등 또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 “그게 바로 두 번째 이유예요. 물론 자본소득은 기업가 정신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부익부의 동학도 공존하는 것이지요. 어느 쪽도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부의 불평등과 그로 인한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중요하다는 점을 피케티는 밝히는 것입니다. 드롱은 이 과정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초부유층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피케티는 초부유층이 부를 축적시키려는 것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아요. 저도 초부유층은 악하고 중산층은 그보다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선악적 잣대를 경계해야 사안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를 이용해 정치사회적 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꿔 가는 ‘사회포획 현상’이 우려되지요. 초부유층은 룰메이킹에 관여하거나 룰을 피하려는 인센티브가 사실상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이런 행위는 분명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고, 부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더 중요하게는 시장체제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까지 흔들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초부유층의 증여나 상속에서 이러한 현상이 흔하게 관찰됩니다. 미국의 경우 드롱은 미트롬니를 예로 들더군요. 그가 이끌던 베인캐피탈이라는 회사는 법적으로 애매한 점을 파고들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었어요. 이 때문에 대선 주자로 당시 지식인들로부터 비난받았답니다.”

선 : “상위 1%, 0.1%가 차지하는 부는 엄청난데 대부분 노동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입니다. 배당금, 이자, 부동산 임대료 등이지요. 이 불평등이 굉장히 심각한데 우리나라는 이런 소득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국세청에서 백분위는 커녕 10분위별 소득 자료도 공개하지 않아요. 초부유층에 대한 정보를 일단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부의 편중이 어떻게 심화되는지 추적하고 분석할 수 있어요.”

◇ 자본세, 세금이 아니라 부의 배분을 위한 것이다.

김 : “미국의 경우 1945~75년 경제적 불평등이 최저를 기록했어요. 당시 미국 정부는 부유층 소득의 80%를 가져갔는데, 이게 1930년대부터 50년 정도 지속됐어요. 이게 소련이 아니고 미국입니다. 성장은 1980년 이후보다 오히려 높았다는 점에 피케티는 주목합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 영국의 마가릿 대처 정부가 들어서자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를 크게 낮췄는데 지난 30년 동안 성장은 낮았고 불평등은 심화되었습니다. 물론 기술의 변화와 세계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두 가지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거지요. 또한 누진적 세율이 성장을 멈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피케티의 경제사적 반론이기도 하고요. 미국 이야기이니 만큼, 경제사까지 진영논리로 파악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해요. 첨언하자면 친기업ㆍ보수주의자들이 피케티에 대해 오해하는데, 피케티는 시장체제를 존중하고 노동소득의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하지 않을 정도라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다만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자본 소유와 그에 따른 자본 소득의 불평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선 : “흔히 ‘버핏세’라고 할 때 워런 버핏이 제안하는 것은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강화입니다.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세와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에 35%의 세율을 매기는데 자본이득에 대한 실질 과세는 OECD 국가 중 5번째로 낮지만 이마저도 잘 걷히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논쟁이 시작되면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이념적 공격부터 시작됩니다.”

김 : “피케티의 이론은 아직 더 검증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피케티의 자본세 처방에는 동의하지 않는 학자라도, 피케티가 그러한 처방까지 제안한 원인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학자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공감되고 있습니다.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감소하는 추세와 초부유층이 대두하면서 사회포획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피케티가 방한 시 말했듯 이를 외면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고, 증여나 상속 과정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초부유층의 사회포획 현상은 부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라도 엄단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자료수집만 15년…경제 불평등 원인 구조적 분석

‘21세기 자본’은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인 토마 피케티는 소득 불평등의 원인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소득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 합쳐진 결과인데,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 수익률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 성장률을 항상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자본이 증식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최근에는 19세기에 볼 수 있었던 초부유층이 생겨났다. 문제는 초부유층이 부를 무기로 정치 사회적 룰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꿔가는 ‘사회포획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이런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세란 상위 1%, 0.1%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임대료, 배당금 등 자본소득에만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부의 배분이 목적이다.

이 책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치밀한 실증연구다. 피케티는 이 책에 근거로 사용되는 자료 수집에만 15년(1998~2013년)이 걸렸다고 말한 바 있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이 수학적이고 이론 고찰에 방점을 두었다면 피케티는 3세기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자료를 근거로 불평등의 변화 과정을 논증한다. 특히 마리카나 백금 광산, 발자크, 제인 오스틴 등 당시 역사적 사건과 소설 등 인문학까지 끌어들여 프랑스식 지적 연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대담하고 혁신적인 주장으로 전 세계에 거센 논쟁을 일으켰지만 그에 반대하는 학자들마저 데이터 분석 방법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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