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임기이기주의 경제정책을 경계한다

입력 2014-07-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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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누구든 자신의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일로 세상에 기억되고 싶어 한다.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가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를 하다 사고를 낼 수 있고,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다 크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놓쳐 국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소위 ‘임기 이기주의’의 문제인데, 장관들은 ‘아차’ 하는 순간 이 함정에 빠져든다. 그도 그럴 것이 재직기간은 길어봐야 1~2년, 대통령처럼 긴 역사 속에서 큰 틀의 평가를 받을 위치도 아니다. 자연히 지금 당장의 평가와 그를 위한 가시적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장관 중에서도 정치인 출신 장관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당장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어쩔 수가 없다. 임기 동안의 실적으로 뭔가 보여주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업적이 쉽게 계량적 수치로 환원되는 부처의 장관들도 그렇다. 이를테면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성장률이라는 수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수치 자체가 지니는 상징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재정 확대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 금리 인하 등과 같은 지금 당장의 성장을 위한 수단들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사설이 길었나? 간단하다. 경제정책의 새 사령탑인 최경환 부총리가 내놓고 있는 적극적 성장 정책들, 즉 재정 확대와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그리고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등이 걱정된다는 말이다. ‘실세 정치인’이라는 위상이 더해지면서 임기 이기주의가 발현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효과를 나타낼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정부도 풀고, 은행과 기업도 풀고, 여기저기서 돈을 푸는데 나아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어찌될 것인가? 또 이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제대로 했을까?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만 해도 그렇다. 양극화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자영업으로 불러들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험한 자영업 생태계를 더욱 험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최 부총리의 임기나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말이다.

사내유보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서적으로야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렇게 벌고도 투자도 배당도 하지 않고 쌓아두고만 있으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수를 쓰든 돈을 풀게 만들고, 그래서 경기도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도 이미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배당을 늘리는 과정에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재무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주주자본주의 폐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 기술 혁신과 에너지 혁명 등에 따른 변화와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재정적 기반이 그만큼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플과 구글을 비롯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큰돈을 비축한 채 변화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이 모든 정책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임기 이기주의 맥락에서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들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정부 전체의 경제정책 방향이 분명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의 정책 라인이 장관들의 임기 이기주의와 단기적 시각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거나 제어하고 있다면 이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청와대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정당과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국회야말로 대통령과 내각의 임기 이기주의적 시각을 조정하고 제어하는 주체라 할 수 있다. 길게는 수백년 동안 이어지는 책임정치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장기간에 걸친 책임정치의 개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 역량 그 자체가 제로에 가깝다.

임기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실세 경제사령탑’, 그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감리장치와 제어장치의 부재. 어쩌겠나. 우리 모두 눈을 더 크게 뜨고, 더 멀리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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