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말문 터진 삼성 이건희 회장

입력 2006-07-03 10:30 수정 2006-07-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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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숙고 후에 말 한마디 '툭'...침묵의 가치를 아는 경영자

"창조적 발상을 하라, 이젠 베끼는 CEO는 필요없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오랜 침묵끝에 입을 열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전자와 금융부문을 제외한 13개 독립계열사 사장단회의를 열고 "삼성의 주요 제품들이 이미 국내외 시장을 통틀어 선두권에 진입해 있는 만큼 다른 기업의 경영을 벤치마킹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앞으로는 삼성만의 고유한 독자성과 차별성을 구현할 수 있는 창조적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창조경영'을 주문한 것이다.

좀 체로 입을 열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새겨듣는 '경청'을 경영철학으로 내세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비자금 사건과 후계상속 문제 등 첩첩한 악재로 1년 가까이 칩거했던 이 회장이 이 최근 경영일선에 복귀하자마자 '주옥'같은 경영화두를 쏟아내고 있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전자부문 사장단회의에서 '마하경영'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그는 "제트기가 음속(초당 340m=마하 1)을 돌파하려면 단순히 개선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는 물론 엔진 소재 부품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최소한(체질과 구조가) ‘마하3’은 돼야 삼성 약점을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삼성은 음속이하의 수준인 만큼 진정한 글로벌 선진 기업이 되려면 완전히 새로운 체질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과 분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지난 5월에는 금융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열린 자리에서 "골프에서 핸디를 줄이려면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 등 전 부문의 기량이 모두 향상돼야 한다"며 '마하경영'과 맥을 같이하는 이른바 '골프경영'을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 "이건희 회장은 평소엔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열사 CEO들이 책임경영을 펼칠 수 있게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삼성이 난국에 봉착했을 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하곤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경영에 복귀하자 마자 이 회장이 경영화두를 내세우는 것도 삼성이 기로에 서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사장단은 현재 이건희 회장의 경영화두를 현장에 접목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이 회장이 사전에 깊은 사고를 통해 결론을 내린 후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룹에선 그의 화두가 곧 헌법과도 같기 때문이다.

◆ 이 회장, 오랫동안 침묵하다 말 한마디 '툭'

이 회장은 사실 그리 달변가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회장의 한마디는 삼성에선 절대적인 '어명'과도 같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화법은 한마디로 이건희식 카리스마로 대변된다"고 말한다.

오너가 갖는 아우라(aura)라도 무시 못하지만 유난히 긴 침묵과 묵상 속에서 터뜨린 말 한 마디가 백 마디의 질책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1993년 소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특유의 화법을 통해 질 중시 경영과 혁신·개혁강조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당시 "보잉 747이든 인공위성이든 일단 활주로를 뜨면 대기권에 진입할 때까지 가야 한다. 중간에서 멈추면 추락하거나 폭발한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혁에 나서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면서 마누라와 자식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꿔야만 세계의 일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는 "등에 땀이 흐를 정도로 위기 의식을 가져라. 세계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월드베스트 제품을 육성하라"며 밀레니엄경영을 내놓기도 했다.

이 회장은 보통 태평로 삼성본관의 집무실에 있기보다는 저택에서 다독(多讀)과 다상량(多商量)을 통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직관적으로 세상으로 나와 화두를 던진다. 장기간에 응축된 걸 한꺼번에 터뜨리다 보니 다들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이 어눌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까닭은 그가 침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며, 말이란 일정한 침묵이 배경이 돼야만 가치가 드러남을 일찍부터 체득했기 때문이다.

지난 97년에 제시한 밀레니엄경영 이후 수년 동안 침묵을 지켰던 이건희 회장은 2002년 4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며 수위 '식은땀'론을 내놓으며 자만에 빠진 삼성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는 두 달 뒤 인재전략 사장단 워크숍에서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다.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다"라며 천재론을 설파하면서 삼성은 물론 재계 전반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당시 계열사 사장들에게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고, 확보한 핵심 인재를 성장시키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사장 평가항목에 반영하도록 하라"는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내세웠다.

이건희 회장은 보통 사장단 회의를 통해 삼성그룹의 새로운 경영 키워드와 사업구상을 내놓는 것이 관례였다. 그룹이 어려움을 겪거나 임직원들의 현실안주 문제 등에 맞닥뜨릴 때마다 해외에서 이를 타개하는 구상을 내놓았었다.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참석했던 이 회장은 “상품 진열대에서 특정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라며 “월드 프리미엄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브랜드 등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해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모두 넘어서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일본은 이건희 회장이 제2의 고항 처럼 자주 찾는 곳이다. 올해 초 한국에 귀국할 때에도 미국에서 암치료를 받고 일본에 머물다 올 정도였다. 과거 연말과 연초에 일본에 체류하면서 사업구상을 가다듬을 때가 많았다. 와세다 대학 출신인 이 회장은 일본에 지인이 많아 예전에도 현지에서 사업구상 등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최근 잇달아 새롭게 경영화두를 내놓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체류가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 이건희 회장의 경영 화두

“삼성의 강점은 한 방향으로 나가는 조직의 힘이다” (90년초 유럽 방문길에서)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 (93년 6월 신경영 선포)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2002년 4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고 이를 뽑기 위해 사장이 얼마나 챙기고 있으며, 확보한 핵심 인재를 성장시키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사장 평가항목에 반영하도록 하세요.” (2002년 5월 용인에서 열린 전자 사장단 회의에서)

“이익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2년 5월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열린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 (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 (2005년 1월 3일 신년사)

"제트기가 음속(초당 340m=1마하)을 돌파하려면 단순히 개선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는 물론 엔진 소재 부품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최소한(체질과 구조가) 마하3은 돼야 삼성 약점을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다" (2006년 3월 전자부문 사장단 회의에서)

"골프에서 핸디를 줄이려면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 등 전 부문의 기량이 모두 향상돼야 한다" (2006년 5월 금융 계열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주요 제품들이 이미 국내외 시장을 통틀어 선두권에 진입해 있는 만큼 다른 기업의 경영을 벤치마킹 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2006년 13개 독립계열사 사장단회의의 에서)

“인센티브란 인간이 만든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대결해서 승리한 요인이다”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수 차례 강조하는 이건희 회장의 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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