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과 재벌 총수들의 경영철학

입력 2006-06-26 10:22 수정 2006-06-2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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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 '최고지향'·LG 구본무 회장 '인물테스트'

재벌 그룹들이 소유하고 있는 골프장은 총수들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장(場)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려면 라운딩을 함께 해보라'는 골프속담이 있듯이 그룹소유 골프장에는 총수들의 경영철학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총수들마다 고유의 경영스타일이 있듯이 골프장도 그룹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사실 골프는 CEO들 사이에서 가장 익숙한 스포츠다.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푸른 잔디 위에서 장시간 라운딩을 하면 누구와도 쉽게 친해질 수 있어서 그룹 총수들이 매우 좋아하는 스포츠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의 샷 스타일과 좋아하는 골프코스를 보면 경영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골프를 잘 치기로 유명한 이재현 CJ회장과 이웅렬 코오롱 회장은 골프장을 건설 할 때 최대한 어렵고 힘들게 골프코스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CJ의 나인브릿지와 코오롱의 우정힐스도 이러한 총수들의 입맛에 맞게 코스가 난해하게 세팅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건희 회장은 재계순위 1위 삼성그룹 총수답게 5개의 골프장을 소유해 국내 최대 골프왕국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은 안양베네스트GC, 가평베네스트GC, 동래베네스트GC, 세븐힐스GC 등 4개의 회원제 골프장과 1개의 대중 골프장인 그렌로스GC를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골프광으로 불릴 정도였던 이건희 회장은 클럽을 손에 놓은 지 몇 년 됐다. 그룹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 일본출장 때 발목을 다친 이후 골프를 중단했고 지난해 겨울 스키를 배웠던 것을 제외하면 과격한 운동에는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 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때 이 회장은 정교한 어프로치샷을 만들기 위해 먼 곳의 과녁을 골프공으로 맞추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답게 이 회장은 한때 핸디캡 12까지 낮출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아들인 이재용 상무에게도 스킨쉽 강화차원에서 "주말에는 삼성 임직원들과 골프를 치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덕분에 이 상무 역시 핸디캡 12정도의 실력이다.

삼성의 골프장은 이건희 회장의 최고지향과 매니아적인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골프장을 관리하는 애버랜드에는 골프장 잔디만을 연구하는 잔디박사가 있을 정도다. 이런 노력덕분에 지난 74년 한국잔디로는 최초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안양중지'를 개발했고

지난 93년에는 안양베네스트 내에 잔디환경연구소도 세웠다.

이 회장은 최고의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지난 2004년에는 잭 니클러스를 초빙해 가평베네스트 코스 설계를 맡기기도 했다.

경기도 안양 부곡리에 위치한 안양베네스트는 다른 골프장과 달리 독특한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권이 없는 대신 매년 2500만원이나 되는 회비를 내야만 회원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독소조항(?)'에도 불구하고 회원자격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줄이 서 있는 골프장이다. 그룹 일부에선 "안양에서 쳐야 인정받는 게 아니냐"는 농담까지도 나온다. 하지만 탈퇴하는 회원이 거의 없어 신규회원 가입은

사실 삼성 최고의 골프장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고 이병철 삼성창업주의 골프사랑에서 비롯됐다. '안양'은 이병철 창업회장의 정성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골프장이기도 하다. 현재 안양GC의 회원은 150여명 정도다.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라운딩을 가졌고 이를 '수요회'라는 골프모임으로 불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성그룹에선 매주 수요일 이학수 구조본 부회장 주최로 전 계열사 CEO들이 모이는 사장단 회의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마찬가지로 핸디캡이 12정도로 수준급이었으나 뭐든지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답게 남들은 평생하기 힘든 홀인원을 세 번이나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골프장 곳곳에 잘 손질된 소나무를 이식하기 위해 이병철 회장이 직접 일본에서 소나무 이식 기술을 습득해 전파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병철 회장의 골프사랑 덕분에 삼성을 비롯한 범 삼성가에서 골프를 못 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병철 회장의 큰딸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도 골프를 통해 정관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한솔그룹의 이인희 고문은 5번의 홀인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고 평소 "골프는 노력한 만큼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며 이는 기업경영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한다.

이명희 회장도 여성으로는 보기 드문 80대 초반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고 자유CC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남양주의 록인CC를 인수하기도 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외부에선 골프를 잘 안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부친인 고 정주영 회장이 스코어에 상관없이 즐기는 스타일로 골프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교한 샷을 통해 핸디를 줄이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골프를 즐긴다는 것이다.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쓰기보다는 대대적인 해외투자 강행 등과 같이 선이 굵은 기업경영스타일과 닮아 있다. 비자금 사건이 터지기 전인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주도에 위치한 해비치 골프장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특히 이 골프장을 관리하고 있는 해비치 리조트는 정몽구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씨와 첫째 딸인 정성이씨가 맡고 있을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정화씨는 해비치 리조트의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이며 정성이씨는 전무로 해비치 리조트에 관여하고 있다.

‘제2의 캐디’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구본무 LG 회장 평소 골프 예찬론자이자 임원 승진이나 중요직책 인재를 선발할 때 꼭 한 번 이상 함께 라운딩을 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을 정도로 기업경영과 연결짓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컨트리클럽에서 협력업체 대표들과 '우의 다지기' 골프대회를 갖기도해 화제를 낳았다.

구본무 회장의 골프실력은 핸디9 정도의 수준급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사람의 인품을 파악하는데 골프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CEO가 될 만한 임원을 불러 '본인도 모르게'테스트를 한다. 바로 골프라운딩을 함께 하는 것이다.

곤지암 골프장에서 주말 골프를 즐기는 구 회장은 주로 계열사 CEO 및 국내외 협력업체 사장들과 라운딩을 한다. 구 회장은 여기에 CEO후보자들을 멤버로 슬쩍 끼워 넣는다. 그리고 나선 골프 매너와 함께 골프공이 벙커나 해저드에 빠지는 등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쳐 나오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특히 골프매너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회장은 상대의 옷차림은 물론 벙커에서 빠져나온 뒤 벙커의 흩어진 모래자국을 스스로 정리하는 지 등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됨됨이를 파악한다. 또한 그린에서 '스리퍼트'를 해 타수를 많이 까먹었을 때 얼굴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경영자로 키울 재목인지를 체크하기도 한다.

구본무 회장은 곤지암CC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GS와 계열 분리하기전만해도 강촌과 엘리시안을 한 때 보유하기도 했다.

곤지암 골프장은 구 회장의 이런 골프인사를 펼치기 위한 안성마춤이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린 코스는 장쾌한 샷을 통한 시원한 느낌을 받기엔 덜 하지만 도전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홀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코스 전체에 벤트그라스가 식재돼 사계절 푸르게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리조트 및 유통 사업을 대한생명을 포한한 금융사업과 함께 양대 축으로 보고 있는 김승연 한화회장은 국내 골프장만 프라자, 설악프라자, 제이드팰리스, 봉개프라자 등 4개나 갖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지난 2004년 적자에 허덕이며 부도직전까지 몰린 일본 나카사키현의 오션팰리스CC를 인수했고 지난 6월초 중국 최대 리조트 회사인 천륜콘도와 제휴를 맺고 양사간의 회원교류를 논의 중에 있다.

김 회장은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도 리조트형 골프장 건설에도 관심을 갖고 한화국토개발을 통해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렸다.

골프장 건설 사업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정작 본인은 골프장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 그룹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몇 년간 80대 후반에서 머물러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골프 실력과 상관없이 골프를 좋아해서 종종 회원권이 7억원대인 제이드팰리스CC를 자주 찾는다. 이 골프장은 11억8000만원대의 삼성 가평베네스트에 이어 회원권이 가장 비싼 대기업 소유 골프장이다.

김승연 회장은 리조트와 연계한 해외골프장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한화의 해외 골프장 진출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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