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를 알아야 CEO도 하지

입력 2006-06-07 14:31 수정 2006-06-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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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LG·GS 주요그룹사 CEO는 대부분 '재무통'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당시 국내 한 대기업의 경영지원 실장은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는 것이 중요한 업무였다. 지금과 달리 그때만 해도 빚이 20조원에 달했었다.

한번은 자금이 부족해 1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아침 8시부터 은행 앞에 쪼그리고 앉아 출근하는 은행장을 기다려 부탁도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결과는 '딱지’였다.

그때 경영지원 실장은 '다시는 은행에 발길을 안 하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금고지기, 자금줄, 재무통 등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리는 재무(경리)담당 임원들은 기업의 운명에 따라 이처럼 궂은 일도 도맡아야 한다.

기업의 운영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은행의 문턱이 닿도록 드나드는가 하면 때론 비자금 마련부터 전달까지 부적절한 기업의 행위에도 깊숙이 간여하며 '악역'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궂은 일은 도맡아야 하는 만큼 '보상'도 철저하다.

기업에선 '재무통을 CEO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로 통한다. 재무담당 임원들이 기업의 구매·생산·개발·마케팅을 아우르는 데다 최근에는 M&A분야 등에도 투입되면서 붙여진 말이다.

실제로 은행 앞에 쪼그려 앉아 출근하는 은행장을 기다렸던 그 경영지원 실장은 3년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바로 최도석 삼성전자의 경영지원 총괄담당 대표이사다.

최도석 사장의 예처럼 재무통을 전략적으로 키우는 곳이 삼성이다. 이건희 회장은 재무담당임원을 단순히 자금관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자리에서 두루 경험을 갖추게 하면서 전략적으로 키웠다.

지난 3월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1실 5팀에서 3팀으로 축소했지만 김상항, 김종중, 이상훈, 조윤영 전무 등 재무담당 임원만 4명이나 포진시키는 등 재무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신뢰는 변하지 않고 있다.

삼성에서 재무통 출신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이가 이학수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널리 알려진대로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로 삼성구조본(현 전략기획실)을 이끌고 있다. 이건희 회장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그룹내 인사이며 이 회장이 장기간 해외체류시에도 그룹이 흔들리지 않고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학수 부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고려대 상과대를 나온 그가 1971년 삼성에 입사해 10년이 넘게 제일모직 경리과에 몸담은 원조 재무통임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대부분 1982년 이후 그룹 회장 비서실에서의 '활약'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대구공장 경리과에서 탁월한 수리(數理)감각을 내세우며 국내 모방직 업계 최초로 개발한 원가분석 시스템을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비서실에 배치 받은 이후에도 재무팀 이사·상무·전무를 거치며 그룹 재무 전문가로 돈줄을 쥐락펴락했다.

재무통 출신인 이학수 부회장의 성공적인 행보에 따라 그룹내에선 제일모직 경리팀 출신은 CEO의 사관학교처럼 여기게 됐다.

김인주 삼성전략기획실(전략지원팀장)사장과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지원 총괄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도 이 곳을 거쳐 나간 재무통 CEO다.

김인주 사장은 80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 90년부터 비서실(현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며 줄곧 재무를 담당했다. 김 사장은 97년 이사, 98년 상무, 99년 전무, 2001년 부사장, 2004년 사장으로 승승장구를 했고, 이학수 부회장과는 마산중학교 후배로 차기 전략기획실 실장의 후보로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최도석 사장은 홍콩의 금융전문지인 '파이낸스 아시아'로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국가별 '최우수 최고재무책임자'에 선정될 정도로 재무전문가로 활약한 인물. “내 별명은 집사”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로 외부 행사에 안 나가고, 삼성전자의 집안 살림만 충실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해외 IR을 다닐 때 동행하는 이가 최도석 사장이다. 그룹내 2인자와 행보를 같이한다는 측면에서 이미 최 사장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의 사무실은 본관 25층에 자리한다. 25층은 삼성의 핵심 전략지다. 수요 사장단 회의도 이곳 회의실에서 열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사무실도 이곳에 있다.

LG그룹에 경우 재무통 출신 CEO로는 강유식 LG 부회장과 권영수 LG전자 사장이 손꼽힌다.

1998년부터 5년간 구조본을 이끈 강 부회장은 지주회사격인 (주)LG를 구본무 회장과 함께 2인 복수대표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강 부회장은 비(非)오너 패밀리로선 유일하게 (주)LG의 등기이사로 올라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의 구본무 회장실 바로 옆에 있는 옛 구조조정본부장 집무실도 그대로 쓰고 있을 정도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 강 부회장은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보유할 정도로 금융과 재무에 밝은 재무통이다. 그룹을 지주회사로 묶으며 GS, LS로 계열 분리는 물론, 방계 가족이 많아 지분이 복잡한 오너일가의 지분 정리까지 잡음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 강 부회장의 이런 능력이 컸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LG전자의 IR 현장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가 권영수 재경부분 사장이다. 올해 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1979년 LG전자에 입사한 뒤 예산과장, 재경팀장을 역임한 기획·재무통이다. LG필립스LCD, LG노텔 등 해외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SK에선 김창근 SK케미탈 부회장과 손관호 SK건설 부회장이 눈에 띈다. 김창근 부회장은 명암이 오갔던 인물로 유명하다. 1974년 입사 이후 SK케미칼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담당 상무를 맡았다. 1997년에는 그룹 구조본 재무팀장을 맡으며 줄곧 자금분야에서 근무하며 SK를 대표하는 재무통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때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한때 옥살이를 하는 쓰라린 경험도 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윗선에서 어떠한 지시도 받은 적이 없었고 아랫사람들은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며 독자책임론을 주장해 최태원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이끌어 냈다는 후문이다.

또한 최태원 회장이 (주)SK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업무상 배임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재무전문가답게 숫자에 밝은 그는 그룹 전체의 자금 흐름을 한 눈에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손관호 부회장도 1977년 선경합섬 경리부에서 시작하여 자금부, 선경인더스트리 재무관리실 실장, SK텔레콤 재무담당 전무 등을 걸치면서 재무통의 입지를 넓혔다. 2002년 SK건설 부사장을 거쳐 2004년 대표이사 사장, 올해 3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GS그룹이 새로운 기업이미지(CI)를 첫 선보이던 지난해 2월. 허창수 회장에게 향후 GS그룹의 비전에 대해 묻는 질문이 빗발쳤었다. 그때 다른 스케쥴로 자리를 떠나야 했던 허 회장은 "궁금한 점은 '이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내 말과 똑같습니다."라고 추켜세웠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의 서경석 사장이다.

총수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서 사장도 재무통이다. 그는 원래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시 9회를 거쳐 국세청 사무관으로 시작한 관료출신이다. 재무부 간접세과장,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과 주 일본대사관 재무관을 거치며 정통 경제관료로 커왔으나 91년 9월 LG그룹 재경 상임고문으로 기업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94년 LG그룹 재무팀장을 거쳐 96년 LG투자신탁운용 사장, LG종금사장, 극동도시가스 사장, LG투자증권 사장을 역임하다 허창수 회장에게 발탁이 되어 GS그룹 탄생과 함께 GS홀딩스 사장을 맡고 있다.

허 회장이 경남고 한 회 후배이기도 한 서 사장의 그룹 내 위상을 보면 GS타워 23층 집무실도 허 회장실과 접견실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됐을 정도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허 회장에게 서 사장을 소개시킨 김갑렬 GS건설 사장 또한 재무통이며 허 회장과 경남고, 고려대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74년 LG화학입사이후 LG상사 등을 거쳐 93년부터 96년까지 LG건설 재경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LG구조조정 본부 재무팀장과 LG화학 최고 재무책임자를 거치며 대표적인 재무 전문가로 부상했다. 2002년 허 회장과 함께 LG건설로 옮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밖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핵심 브레인으로 통하는 이방주 사장,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혐의로 검찰에 의해 가장 먼저 구속 된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 회계장부를 줄줄 외며 그룹의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챙기며 신격호 회장의 ‘오른팔’인 김병일 호텔롯데사장 또한 그룹 내에서 손꼽히는 '재무통'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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