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호의 小數說] '악의 축'이 된 규제

입력 2014-04-0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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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이 집안 사람들 간에 시비가 생겼을 때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고 다독여 일방의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중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현장을 그대로 체감하지 못한 사안의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 상호간 이익을 위한 대립하는 상황에서 해학을 활용해 스스로 깨닫고 양보하도록 이끌어낸 것이다. 난처한 상황에 대처하는 그의 행동은 권력을 잡은 리더의 발언이 얼마나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토론회에서 향후 규제를 개혁하기 위한 정부의 방침을 천명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같은 달 10일 “규제는 처부숴야 할 원수·암덩어리”라고 말하며 강력한 의지를 내세웠다. 저성장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확신한 박 대통령의 분노가 엿보였다.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의 눈 앞에서 호된 질타를 들어야 했던 부처 수장들은 대대적인 규제 공세에 착수했고, 각 부처는 즉각적인 철폐 작업 경쟁에 돌입했다. 이는 최근 취임과 함께 “지방규제 5200건을 올해 안에 없애겠다”고 다짐한 강병규 신임 안전행정부 장관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장이 공식석상에서 규제를 암덩어리나 원수 등 '악의 축'으로 규정짓는 것은 시장에 일방적인 신호를 주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더구나 발표 이후부터는 여기저기 이의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타당성과 효율성을 합리적으로 담보되야 할 경제 영역에 모든 것을 ‘선과 악’ 시각으로 보는 유사이념적 이분법이 개입하며 생긴 해프닝이다. 좋은 규제 또는 나쁜 규제에 매달리기 이전에 우선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규제를 집행하고 때로는 입법도 하는 정부가 이처럼 역할을 바꾸고 있는 부분도 신중한 검토가 요청된다. 당초 시장의 불평등을 겨냥해 만들어진 규제는 각각의 합당한 근거에 입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로부터 기존 규제들이 제거되야 한다는 시대적ㆍ환경적 근거들을 명확하게 듣지 못하고 있다. 숙제가 내려진 정부는 숫자에 매달리고 있다. 예컨데 강 장관이 언급한 5200건의 지방규제는 작년 말 기준으로 전국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등록한 규제 5만2541건의 10%에 해당한다.

규제 개혁 토론회 이후 정부는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특히 학교 인근에 호텔 건립을 허가하는 문제 등 민간한 사안에서는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고민과 판단이 거세된 정부의 과잉 경쟁으로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선 당시부터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설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하지만, 3월 토론회에 앞선 지난 2월 박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사라졌다. 취임 1년만에 종언을 고한 셈이다. 황희 정승의 교훈을 통해 정책 집행 저울의 균형점이 회복되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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