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창조경제 스위스에서 답을 찾는다] 기업이 배움터, 학교가 현장…실사구시형 인재 양성

입력 2014-04-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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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률 OECD국가 최저인 6%대…기업 30~40% VET 견습제도 운영

스위스는 우리나라와 같은 듯 다른 나라로 통한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하지만 우수한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위스는 특유의 개방성과 혁신 전략으로 직업교육 위주의 실사구시형 기술인재 시스템을 정착시켜 1인당 국내총생산(GDP) 8만 달러의 강소기업의 천국으로 떠올랐다. 반면 우리나라는 스펙 위주의 사회 현실에 부딪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일·학습 병행 정책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규제완화 화두에 밀려 첨단 기술산업 중심의 창조경제는 더욱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 고착돼 있는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을 뒤엎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위스의 성공 키워드를 집중 분석해 갈 길 잃은 우리나라의 창조경제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본다.

일터와 학교의 경계선은 없었다. 기업이 곧 배움터이고 학교가 곧 기업 현장이었다. 학교에서 직업교육을 통해 배운 이론과 지식은 곧바로 기업에서 실무에 적용한다. 스위스의 실사구시형 직업훈련교육(VET:Vocational Education&Training) 메커니즘이다.

스위스식 직업훈련은 과거 길드(상인조직)가 상인들의 전문지식 습득을 위해 현장의 기술인력을 책임지고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전통에서 비롯됐다. 학교와 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나눠 기술인재를 집중적으로 키워내는 듀일직업교육 시스템은 기계·시계·제약 분야의 ‘메인드 인 스위스(Made in Swiss)’의 명성을 가능케 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생산현장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청소년들이 스위스 기술인력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6%대 청년실업률, 철저한 실용교육 시스템의 산물 = 스위스의 청년고용률은 2012년 기준 61.7%에 달하며 청년실업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인 약 6%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진학률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교육과 고용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환경 덕분이다. 현재 스위스에는 230여개 직업군을 포괄하는 410여개의 직업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보통 3~4년 과정을 밟게 되는 이들 직업학교 학생들은 주 1~2일은 직업학교에서 이론교육을 받는다. 나머지 주 3~4일은 계약을 맺은 기업에서 현장훈련을 받고 실무 경험을 쌓는다. 이론과 기업 견습, 일과 학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도제식 실습이다.

지방정부와 기업, 직능협회는 직업교육 시스템의 든든한 삼각편대다. 우선 직업학교 학비는 대부분 면제되는데, 중앙정부는 학비의 4분의 1만 지원할 뿐 나머지는 모두 지방정부의 몫이다. 또 정부의 별도 지침 없이도 기업과 직능협회는 스스로 교과과정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참여해 직업교육이 기술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스위스 기업의 30~40%가 VET 견습제도를 운영 중이다. 현재 VET 프로그램에는 5만8000개 기업이 약 8만개 견습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참가 기업은 임금, 훈련물품비, 훈련비 등 총 53억 CHF(약 6조2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한다. 훈련생 신분으로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많지는 않지만 소정의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은 58억CHF(약 6조8000억원)로 약 5억CHF(약 6000억원) 정도 이익을 보고 있다. 미래의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체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위스는 세계적 정밀기계, 화학, 바이오 산업의 메카로 통한다. 역시 과학기술 인재 양성 중심의 실용주의적 교육시스템이 그 비결로 꼽힌다. 스위스의 초·중등 교육은 우리나라의 초·중등 과정이 통합된 형태(9년)로 운영되며 7학년 이후 성취도를 기반으로 적성을 파악한 후 고등학교 과정을 선택하게 된다. 고교과정은 소수의 상위권 학생만이 김나지움(Gymnasium)이라는 일반 고등학교 과정으로 진학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직업학교를 선택한다.

대학 교육 역시 인문사회 계열보다 이공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직업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8개의 3년제 기술전문대학도 별도로 운영 중이다. ‘직업학교’라는 체계화된 시스템을 통해 청년 인력의 이공계 분야 진출을 권장하고 전문기술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요한 슈나이더 암만 스위스 연방경제교육연구부 장관도 작년 7월 한국을 찾은 자리에서 “스위스 혁신의 원천은 현장 중심의 교육체계”라며 “학생들이 실무 능력을 갖춘 이후 학교를 졸업하다 보니 스위스의 청년실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스위스 실사구시형 인재 DNA 심기 작업 ‘착수’=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2012년 기준 71.3%에 육박했지만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3%로 스위스보다 높았다. 한국의 높은 대학진학률(2013년 70.7%)과 청년실업률(8.5%), 낮은 청년고용률(39.9%)과 대조를 이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중순 스위스를 방문해 부르크할터 스위스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국형 기술인재를 키우기 위해 스위스와 손을 맞잡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스위스기계산업협회(SWISSMEM)와 기계·바이오 분야 마이스터고 졸업생 가운데 매년 20명을 선발해 2년간 스위스 현지에서 직업교육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글로벌 기술인력 양성’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KIAT는 수원하이텍 고등학교와 교육 커리큘럼, 학생 역량 및 수요 등을 파악하고 로슈진단·뷜러·뷰키·올리콘 발저스 등 주한 스위스 기업 10곳과 프로그램 추진안을 논의하고 협력 의사를 재확인했다. 이달부터는 이들 기업 실무자와의 구체적 협의에 들어갔다.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 20명의 학생이 선발돼 내년 9월부터는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다만 스위스의 경우 외국인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이 어려운 만큼 일단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우선 국내에서 주한 스위스 기업에 취업한 후, 스위스 본사에서 직원 신분으로 도제교육을 받는 방식을 택했다. 스위스 본사에서 직업훈련 비용을 학생 1명당 월 100만~150만원 정도 지원하게 되며, 우리 정부는 내년부터 체제비 일부 지원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에 편성할 계획이다.

김류선 KIAT 산학협력단장은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학생들이 스위스 교육시스템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스위스 직업교육의 DNA를 철저히 몸으로 체득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대학졸업자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모멘텀을 갖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스위스 현지 기업의 학력 타파 및 기술 중시 기업문화를 배워 한국 사회에 전파, 능력 위주의 시스템이 정착되는 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김 단장은 “이번 한국과 스위스의 인재양성 협력이 ‘한국형 직업교육 혁신 방안’을 마련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학력타파, 실력주의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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