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형 참사 ‘데자뷰’ -정재석 사회생활부장

입력 2014-02-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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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처다.

참사(慘事)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정부의 ‘땜질식’ 처방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숱하게 반복되는데도 그때마다 내놓는 처방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라는 다짐이 고작이다.

다짐에서 보듯, 밑도 끝도 없는 추상적인 말뿐이다. 무엇이 근본 대책인지, 아직도 근본을 찾지 못한 것인지.

이번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어김없이 안전 불감증과 인재(人災) 타령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다.

늘 그래왔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과 개인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고는 대책 마련 운운하며 꽁무니를 빼왔다. 그렇다고 기업 등에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근본’을 따져보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책임있는 자세는커녕 반복되는 사고조차 제대로 학습ㆍ예방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6월 19명의 유치원생과 인솔교사, 강사 등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씨랜드 화재사고. 40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한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그해 12월 18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11명의 인명 피해를 낸 작년 구로동 화재 등등. 이들 사건의 중심에는 모두 하중에 약하거나 가연성 높은 샌드위치 조립식 패널이라는 값싼 자재가 있다.

화성씨랜드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샌드위치 패널 사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까지 유명무실하다.

건축법 시행령에 지나치게 많은 예외를 두거나 현실성 없는 규제로 경주 사고 체육관과 유사한 바닥면적 1000㎡의 창고가 전국에 3500여 곳에 달하는 등 우후죽순 들어섰다.

이처럼 정부의 의지가 흐지부지되면서 발생해서는 안 될 후진국형 대형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느슨한 각종 법규를 재정비하고 철저한 단속도 병행해야 한다. 맞물려 ‘사고백서’를 각 유형별로 충실히 발간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사고백서는 각종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그 현상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 분석, 정보를 축적하는 보고서다. 재발 방지와 함께 장래의 정책 수립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역시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은 찾기 힘들다.

지난 18일은 대구지하철 참사 11주기다. 192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됐고 148명이 다친 세계 두 번째로 큰 대형 참사였다.

후진적 사고에 수습 또한 후진적이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백서조차 없다. 심지어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백서 발간 비용 횡령과 희생자 공동묘역 추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고소·고발이 오고 가는 등 사회 구성원 간 갈등과 반목(反目)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일본 국립소방연구소와 도쿄도(都)소방청은 참사 직후 조사팀을 수차례 대구에 파견하고는 이듬해 3월 상세한 ‘대구 지하철 사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와세다대 교수 등 17명의 위원들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사고 발생 3일 뒤 대구시소방본부장과 면담한 기록부터 도쿄 지하철이 개선해야 할 사항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곧바로 도쿄(東京) 지역의 취약한 역사(驛舍)에 대한 피난로 확충 등 구조적인 부분들까지 뜯어 고쳤다.

일본은 자신뿐 아니라 이웃나라의 사고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철저한 학습을 통해 치밀하게 정보를 축적하고 현장에 적용한다.

그리고 조그마한 사고를 겪을 때마다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시설을 갖춘다. ‘안전’에는 그 어떤 예외도 두지 않는다. 바로 정부가 할 일인 것이다.

정부는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만 해서는 안된다. 또 안전을 들먹이며 국민을 계몽해서도 안된다. 정부는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교훈을 남기는 작업에 부족함이 없지 않나 되돌아봐야 한다.

2014년 보름 간격으로 여수ㆍ부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기름유출 사고와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 그리고 1995년 한 달 새 발생했던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2013년 방화대교 상판 붕괴. 이 땅에서 참사 데자뷰 현상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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