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그림이 있는 골프] 핸디캡, 자랑 아니다

입력 2013-11-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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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삽화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핸디캡(handicap)의 어원은 스카치 위스키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친구 셋 이상만 모이면 아침부터라도 술집으로 직행하여 술잔치를 벌이는 게 관습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사나이들의 열린 가슴은 술값을 계산할 때도 그대로 드러나 각자 제 몫을 내는 네덜란드 사람들과는 달리 쩨쩨하게 굴지 않았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사나이들은 일행 중 누군가 “자, 이제 그만 마시고 술값을 내지”라고 말하면 누군가가 모자를 벗어들고 “핸드 인 어 캡(Hand in a cap)!”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면 모두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모자 속에 집어넣는데 일정한 액수 없이 자기 주머니 사정에 따라 내면 된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를 모르면서 모두 자기 형편에 맞게 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공평하고 마음 편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모자 속에 쪽지를 넣어 제비뽑기를 하게 해 표시가 있는 쪽지를 뽑은 사람이 술값을 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공평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런 어원의 핸디캡 제도를 골프에 도입했다는 것은 골프의 신사도를 말해준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허점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점수를 접어준다는 것은 골프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만인의 평생 운동으로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른 스포츠에선 체력의 우열이나 연습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이미 승패의 결과가 예견되지만 골프는 다르다. 핸디캡을 인정해주는 골프에선 고수와 하수가 만나더라도 게임이 성립된다. 핸디캡이란 절묘한 룰로 강자라도 늘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고 약자라고 져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

핸디캡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핸디캡을 더 달라.” “자네 핸디캡은 고무줄이냐?”는 등의 시비를 벌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기할 땐 핸디캡을 높이고, 친선게임을 할 땐 핸디캡을 낮추는 등의 모순도 사라질 것이다. 핸디캡은 자신의 현재 그대로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얼 속이고 감추고 더하고 뺄 것이 있는가.

그러나 골프를 하겠다고 나선 이상 높은 핸디캡을 자랑으로만 내세울 수는 없다. 골프라는 것이 부단한 연습과 자기수양으로 스코어를 개선해나가는 게임인 만큼 핸디캡을 줄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골프기술을 완벽에 가까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나 미국의 벤 호건은 거의 구도자에 가까운 집념으로 작은 체구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골프 영웅으로 골프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골프에서 핸디캡이란 상대방이 베푸는 은전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를 자극하고자 동반자에게 하는 공개적 개선 약속이다. 당연히 다음번에 만날 때엔 핸디캡을 줄이는 것이 골퍼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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