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 시대의 명암]애 낳았는데… 회사가 준 출산 선물은 ‘퇴사’

입력 2013-11-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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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피하려 발버둥… ‘직장맘센터’ 1년간 1167건 상담

#지난해 출산 및 육아로 직장을 쉬고 있는 김모(31)씨는 육아 휴직을 1년 더 연장했다. 당장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는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다. 전업주부로 돌아서는 순간 자신의 사회 경력이 한순간에 단절되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긴 했지만 양육과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김씨는 여전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올해 첫돌을 보낸 딸을 키우고 있는 박모(30)씨는 앉으나 서나 자식 생각뿐이다. 친정어머니가 딸을 돌봐주고는 있지만 늘 걱정이 앞선다. 아이가 아플 때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휴대전화기를 놓지 못한다. 반면 집에 가면 회사 일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국내 주요 10개 그룹 82개 기업이 참여하는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가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박람회장을 찾은 구직자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박근혜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하루에 4시간에서 6시간 일하면서 정년은 보장되고, 복리후생은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 제도다. (사진=방인권 기자)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일과 양육 둘 다 포기 못하는 이른바 ‘직장맘’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직장에선 아이 생각, 집에선 회사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은 우선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또 양육을 선택하면서 전업주부로 돌아서는 순간 사회 경력이 단절된다.

한번 단절된 경력은 쉽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최근 여성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미루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국내 기업 문화 및 제도가 일하는 여성들을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출산은 곧 퇴사’라는 인식이 강한 국내 기업문화에서 ‘육아와 일’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직장맘의 고민이 늘자 이들을 돕기 위해 세워진 수도권의 한 기관에는 고충 상담 건수가 1년 사이 1000여건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개관한 직장 맘 지원센터가 1년간 1167건을 상담했다고 올 7월 밝혔다. 이 가운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이 81.2%로 가장 많았고 보육정보 제공 12.8%, 개인 고충상담 6% 순이었다.

중소기업을 다니던 한 여성은 지난해 일을 그만뒀다. 그는 유아휴직 후 복귀를 노렸지만 아이를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고민 끝에 자녀 양육을 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일과 육아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아이에게 집중 할 수밖에 없다. 기업문화가 바뀌거나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 같은 경력단절 여성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에 여성 노무사 10명으로부터 재능기부를 받아 직장 맘 지원센터의 온라인 상담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시는 지난달 양육권을 보장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그 때문에 일터를 떠난 ‘직장맘’들을 도울 전문가 25명을 지원단으로 위촉했다.

이달 초 발족한 ‘경력단절예방지원단’에 변호사, 노무사, 심리 정서연구가 등 전문가 25명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다. 이들은 서울에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여성들의 경력단절 사례를 상담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법률 상담이나 법률대리인 선임 등을 지원한다.

법률 분쟁으로 이어지면 비정규직 또는 일정 기준 이하의 임금을 받는 여성은 변호사·노무사 수임료가 무료다. 그 외에는 국선변호사와 노무사 수임료 수준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시는 변호사 2명, 노무사 3명으로 구성된 ‘제도개선위원회’도 만들어 출산 전후휴가 등 육아휴직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직장맘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잘 돼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대표적으로 스웨덴과 네덜란드를 꼽을 수 있다. 여성경제활동인구가 70%을 넘는 스웨덴은 직장맘의 천국이라 불린다. 출산 후 1년은 모유수유를 위한 육아휴직을 하고 빈부에 상관없이 돌이 지나면 지역탁아소를 이용한다. 이 중 75%는 지방정부가, 25%는 민간육아공동체가 운영한다고 한다. 부모는 16개월의 법정육아휴직을 8세까지 나눠 사용할 수 있으며 휴직일 480일 중 160일은 남성이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출산 후 1년의 육아휴직 후 복직하게 되면 근무시간은 단축되며 수년 후부터 정상 근무를 하고 언제, 어느 때라도 복직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네덜란드는 파트타임 고용제를 통해 직장맘의 고충을 덜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OECD 통계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지난해 기준 근로자의 37.2%가 시간제이다. 근로시간도 전일제(주 35시간 이상)와 시간제(주 24~35시간) 간 큰 차이가 없다. 둘 사이 임금 격차도 민간부문에서는 7%, 공공부문에서는 거의 나지 않아 직장맘으로선 이 제도를 통해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결혼한 여성들의 일자리를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장 맘’ 경력보호 지원단을 위촉한 서울시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자치단체에도 직장맘을 돕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직장맘을 대상으로 한 채용도 실시 중이다.

인천시 부평구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맘의 고충을 담은 육아사례집을 지난 8월 발간했다. 책 제목은 ‘부평구 육아사례집-슈퍼우먼으로 살아가는 직장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3·8 세계 여성의 날 열린 여성 공직자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부평구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원의 각종 육아 사례를 모은 것이다. 현실적인 고충을 털어놓는가 하면 육아시설을 확충하고 일하는 엄마를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부평구 한 관계자는 “육아 고민이 단순한 푸념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려고 육아사례집을 발간하게 됐다”며 “이 책이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 여성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과 CJ오쇼핑 등 일부 기업은 최근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서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채용 상담을 실시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각 지점에서 근무할 수 있는 텔러(금전 출납계 직원)를 뽑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 경력이 있으면 좋고 없다고 해도 사무직을 경험했던 경력단절 여성이면 교육을 통해 누구나 업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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