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그림이 있는 골프] 슬럼프라는 주술을 푸는 길

입력 2013-11-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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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삽화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의 속성은 천국과 지옥에 걸쳐진 외줄 위에서의 곡예나 다름없다. 추락 없는 골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타이거 우즈나 박세리, 캐리 웹, 청 야니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느닷없이 슬럼프의 늪에 빠져 헤맨 것을 보면 아마추어의 눈으로는 쉬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잘 가다듬은 흠잡을 데 없는 스윙, 든든한 배짱, 그리고 화려한 우승기록과 다양한 실전경험 등을 감안하면 한순간이 아닌 1∼2년의 슬럼프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타선수들의 추락과 긴 슬럼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때 타이거 우즈와 함께 세계 랭킹 1위를 다투던 데이비드 듀발의 경우 2002년부터 바닥 모를 슬럼프에서 빠져 10년 넘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를 잇는 골프여제로 명성을 날렸던 청 야니도 1년 넘게 우울한 슬럼프 기간을 보내고 있다.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골퍼로 추앙받던 박세리가 장기간 컷오프의 치욕을 당하며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를 아끼던 팬들의 마음이 이럴진대 본인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주말골퍼들은 연습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스코어가 기대에 못 미치면 절망하고 분노에 휩싸이기 일쑤다. 구력 수십 년에 싱글을 친다는 골퍼 역시 느닷없이 찾아오는 슬럼프에 심한 배반감을 느끼며 골프와 결별할 것을 수없이 다짐하기도 한다.

아마추어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 몸에 익은 습벽이 골프의 기본과 거리가 멀고, 평소 연습을 게을리한다거나, 집중을 하지 않는다거나, 주변에 휩쓸리기 쉽다든가 자신의 취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슬럼프가 그렇게 황당하지는 않다.

그러나 박세리 같은 세계 정상급 골퍼가 긴 슬럼프에 빠진다면 사정은 다르다. 2004년 미켈롭 울트라오픈 우승 이후 2년여의 슬럼프에 빠졌다. 성급한 사람들은 박세리의 재기를 희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런 박세리가 2년1개월 만에 2006년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챔피언십에서 캐리 웹과 연장 접전 끝에 우승컵을 안았다.

슬럼프에 빠진 골퍼들은 하나같이 ‘이유 없이,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분명 이유가 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박세리도 오랜 고통의 나날을 보낸 뒤에야 추락의 원인을 깨달았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뒤 찾아온 목적 상실에 따른 허탈감, 골프를 빼면 의미를 찾기 힘든 단조로운 일상, 결혼 적령기를 맞은 여인 특유의 초조감, 실력 있는 후배들의 등장, 골프가 아닌 취미생활 부재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신감 상실과 강박관념, 조바심 등을 초래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박세리가 아버지에게 “왜 아빠는 나한테 노는 법을 안 가르쳐줬느냐”고 눈물로 따졌겠는가.

골프의 슬럼프는 지나치게 골프에만 집착하면서 찾아온다고 보면 틀림없다. 늘 신기록을 추구하고, 모든 경쟁에서 이기려고 달려들수록 골프는 난해해진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골프를 즐기는 자세’임을 깨닫기만 하면 웬만한 슬럼프는 감기 몸살처럼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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