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기록물 문제, 오해와 억측을 멈춰라

입력 2013-10-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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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지원, 팜스, RMS…. 기록물 실종과 관련해 나오는 단어들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 표제부, 지정기록 관리, 부문별 삭제 기능, 정권이양을 위한 초기화… 감이 잘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이-지원을 썼다. 많게는 하루 수십 건씩 이를 통해 문서를 처리했다. 보통사람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 있다. 참여정부 초기 기록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전문가팀을 만들어 운영한 적도 있다. 이 역시 조금은 공부를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어떤 부분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의도적 삭제를 주장하며 이것저것 그 증거라고 내놓는 사람들이나, 이를 전제로 대통령 후보와 세상 떠난 대통령을 ‘가지고 놀 듯’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시스템이나 그 운영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왜 이리 급한가. 누구나 쉽게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다. 일단 검찰의 최종발표와 그에 대한 반론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믿고 싶은 방향의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된다. 기자건 방송토론자건 아니면 정치인이건 그렇다. 검찰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해설도 주장도 정보제공도 아니다. 선동이다.

며칠 전에도 이-지원에 삭제 기능이 탑재돼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차기 청와대를 위한 초기화 기능 60개, 이관 기능 10개 등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초기화 기능과 관련된 삭제기능 등이 뭐 그리 이상한가? 어느 부분이 기록물 본문을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말인가? ‘삭제’라는 단어 하나에 흥분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참여정부와 그 인사들도 책임이 있다. 의심받을 일을 자초했다. 봉하마을로 이-지원 복사본을 가져간 것부터 그렇다. 온라인 열람이 가능할 때까지의 ‘열람 편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기록관으로 먼저 이관한 후 그곳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복사본을 건네받았어야 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을 포함해 참여정부 관련 인사 모두가 송구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저’를 ‘나’로 고치는 등 대화록 일부를 고친 것도 화근이다. 어차피 양쪽 정상 간의 공식적 합의문은 잘 다듬어져 발표되었다. 회의록은 회의록대로 주요 내용을 담아 잘 정리하면 된다. 대화록은 말 그대로 대화록이다. 기침소리 하나도 그대로 기록되는 것이 맞다. 꼭 고쳐야 했다면 상대방, 즉 북쪽의 동의를 얻어 고쳤어야 했다.

봉하마을로 가져갔던 이-지원에는 있는 문서가 대통령기록관 이-지원에는 없는 이유도 주도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봉하마을 이-지원에 있으니 ‘사초 실종’은 아니라는 주장은 더욱 말이 안 된다. 그러니 더 문제라고 하는데, 그래서 문제가 없다니 듣는 사람들의 눈 끝이 올라갈 수밖에. 자료에 접근할 수 없고, 또 주체적으로 추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백방으로 그 이유를 기억할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그렇다. 의심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라. 평양에도 있고 국정원에도 있는 문건이다. 음원파일도 있다. 없앤다고 없어지는 문건이 아니다. 또 없애봐야 검찰이 저렇게 쉽게 살려낸다고 한다. 우리가 그런 문건을 의도적으로 삭제할 정도로 우둔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겠는가.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오해와 억측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알랭 들롱과 장 가뱅이 출연한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Two Men in Town)’의 첫 장면에 나오는 보호감찰관 장 가뱅의 독백이다.

그렇다. 오해와 억측이 아랭 들롱을 단두대로 몰아간 것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대통령까지 다시 죽이고 있다. 또 그 위에 살아 움직이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선동이 우리 모두를 쓸모없는 분쟁과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오해와 억측을 멈추자. 그리고 기다리자, 뭔가 좀 더 분명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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