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대통령의 사과와 여의도 정치

입력 2013-10-0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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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기초연금 문제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 제대로 된 사과인가? 글쎄, 미안한 마음이 제대로 담겨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할 말이 없다. 알 수도 없거니와, 일면 그렇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과를 그 정도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의 사과라면 일이 잘못된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따져야 한다. 기분만 풀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사과는 영 마땅치 않다. 일례로 공약을 지키지 못한 배경으로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을 들었는데 이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기침체와 세수 부족은 대선 당시 이미 예상되고 있었다. 지금 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예상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더 문제다. 경제를 읽을 기본적인 능력도 없이 정부를 맡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사과를 하자면 무리하게 공약한 것부터 사과했어야 했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식의 정치와 그런 정치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저 ‘최선을 다할 테니 믿어 달라’는 말 대신 지금부터라도 국가 재정과 복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그런 내용이 없으니 담당 부처 장관의 마음도 사지 못해 저 야단이다. 제아무리 책임감 없는 장관이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사과가 가슴에 와 닿았다면 저렇게 항명에 가까운 태도로 사표를 던지겠는가.

더 딱한 것은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다. 사실 복지 문제에 관한 한 정치권 전체가 공범이다. 아니 오히려 주범이라고 하는 게 맞다. 역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재정능력과 관계없이 이런저런 약속을 남발해 왔기 때문이다.

재정 문제를 따지면 대답은 늘 같았다. 지출을 줄이면 되고, 부자들에게 더 거두면 된다는 식이었다. 명색이 집권 경험이 있는 정당들이고 정치인들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래 봐야 얼마를 더 확보할 수 있는지 모를 리 없다. 알고도 그렇게 말하고, 그 말에 붙잡혀 다시 그렇게 주장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정치권이야말로 대통령에 앞서 사과와 반성을 해야 했다. 야당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았나. 부자들로부터 더 거두면 된다고. 정말 그렇게 충분한가. 또 거두기는 그렇게 쉬운가. 고개 숙인 대통령을 비난하기에 앞서 집권의 의미와 그 책임의 무게를 다시 한번 느껴 보라. 그런 말이 쉽게 나올지 의문이다.

다시 봐도 자기 반성의 모습은 없다. 여당은 어정쩡하고 야당은 신바람이라도 난 듯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은 정치권을 믿지 못한다. 정치권을 믿지 못하니 국가도 정부도 믿을 수가 없다. 세금을 더 내겠다는 마음은 생길 리 없다. 당연히 합리적 증세 논의 등 국가 재정과 복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국민적 논의나 노력은 그만큼 더 멀어지게 된다. 이 나라 정치가 이 나라 복지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다.

노인 빈곤율 45%, 노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 수입으로 살아간다. OECD 국가 평균인 13.5%의 세 배다. 노인 자살률 또한 65세에서 74세에 이르는 인구 기준으로 10만 명당 89명, OECD 국가 평균의 4배다.

노인만이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실업과 가계 빚에 허덕이고 있고, 수많은 청소년이 희망을 잃은 채 거리를 헤매고 있다.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끝날 문제도 아니고,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무조건 더 주겠다는 식의 정치로 끝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버클리대학 교수였던 고 윌다브스키가 말했다. “혁명이 일어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많이 주겠다고 약속해라. 그리고 주지 마라. 이것저것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라. 그리고 돈은 턱없이 적게 주라. 그러면 혁명은 반드시 일어난다.”

국민이 분노하기를 원하는가. 들고 일어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모두들 지금처럼 해라. 그러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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